주역(周易)은 우주의 기운이 음(陰)과 양(陽)의 특성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관측해 만든 체계다. 음은 전극 속성에도 양적 요소와 음적 특징이 존재하며, 양에도 양적, 음적 요소가 모두 함유돼 있다. 이를 소양, 태음, 태양, 소음으로 분류해 사상(四象)이라 부른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사상체질은 주역의 이론에서 취용한 것이다.
주역에서 변화를 이루는 핵심은 음이 변해 양이 되고, 양이 변해 음이 되는 과정에서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주(主)와 객(客)이라 하겠다. 주역에서 주체가 되는 효는 소수가 된다. 예를 들어 양이 2개, 음이 1개라고 한다면 음이 주효(主爻)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의 상호작용에 따라 양이 음으로 변하기도 하고, 음이 양으로 변함에 따라 주효 또한 바뀔 수 있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기류를 부호로 표현한 게 바로 주역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능소(能所)도 같은 개념이다. 능소는 인식의 주관과 객관을 뜻한다. 대승에서는 생각마다 모양이 없으며, 무위(無爲)함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을 설파한다. 생각은 곧 마음이다. 마음에는 모양이 없고 생각에 생각을 일으켜도 이 역시 무위한 게 자연의 본성이며, 이것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능소도 궁극에는 해체된다. 대승에서는 마음에 ‘나’도 없고 ‘주재자’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주역에서의 체(體), 용(用), 주(主), 객(客) 또한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궁극의 경지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익과 안위를 지켜야 하는 가장이며, 조직에 속한 직업인이고,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다. 궁극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무위와 주재자가 없음을 언급한다면, 허무와 도탄에 빠지는 지름길과 다를 게 없다.
힘을 빼라고 할 때 어떻게 빼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하게 움켜잡아봐야 힘이 빠지는 경지가 어떤 상태인지 느낄 수 있다. 달리 말해 힘이 있어야 힘을 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완성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완성을 가정해 현실로 도피한다. 또한, 제대로 된 힘을 주지도 않았으면서 힘을 빼는 흉내를 낸다. 이런 리더는 오래 갈 수 없다. 제대로 움켜잡아보고 내려가도 봐야 후회가 없다.
물론,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말 열심히, 제대로 힘 쏟았는데도 도달하지 못해 운을 탓하고 조직이나 상사를 원망한다. 그러나 주가 되는 기회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기회가 도처에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시간을 쪼개 누리는 취미, 선행과 봉사로 더불어 사는  삶 등 소박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주가 될 수 있고, 움켜쥐었던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떨 때 힘을 주고, 빼야하는지 터득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산을 오를 수 없는 이유와 같다.(다음 호에 계속)  

 

주역(周易)으로 읽는 경영 ⑭ 주체(主體)와 객체(客體) I > COLUMN & ISSUE | CEO&
사이트 내 전체검색

주역(周易)으로 읽는 경영 ⑭ 주체(主體)와 객체(客體) I

CEO Message, 노해정 휴먼네이처 대표 | 2019년 03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주역(周易)으로 읽는 경영 ⑭ 주체(主體)와 객체(客體) I

9fd2baa872faf3464a8357a5476ff617_1551625499_3224.jpg

 

주역(周易)은 우주의 기운이 음(陰)과 양(陽)의 특성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관측해 만든 체계다. 음은 전극 속성에도 양적 요소와 음적 특징이 존재하며, 양에도 양적, 음적 요소가 모두 함유돼 있다. 이를 소양, 태음, 태양, 소음으로 분류해 사상(四象)이라 부른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사상체질은 주역의 이론에서 취용한 것이다.
주역에서 변화를 이루는 핵심은 음이 변해 양이 되고, 양이 변해 음이 되는 과정에서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주(主)와 객(客)이라 하겠다. 주역에서 주체가 되는 효는 소수가 된다. 예를 들어 양이 2개, 음이 1개라고 한다면 음이 주효(主爻)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의 상호작용에 따라 양이 음으로 변하기도 하고, 음이 양으로 변함에 따라 주효 또한 바뀔 수 있다. 이렇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기류를 부호로 표현한 게 바로 주역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능소(能所)도 같은 개념이다. 능소는 인식의 주관과 객관을 뜻한다. 대승에서는 생각마다 모양이 없으며, 무위(無爲)함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을 설파한다. 생각은 곧 마음이다. 마음에는 모양이 없고 생각에 생각을 일으켜도 이 역시 무위한 게 자연의 본성이며, 이것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능소도 궁극에는 해체된다. 대승에서는 마음에 ‘나’도 없고 ‘주재자’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주역에서의 체(體), 용(用), 주(主), 객(客) 또한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궁극의 경지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익과 안위를 지켜야 하는 가장이며, 조직에 속한 직업인이고,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다. 궁극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무위와 주재자가 없음을 언급한다면, 허무와 도탄에 빠지는 지름길과 다를 게 없다.
힘을 빼라고 할 때 어떻게 빼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하게 움켜잡아봐야 힘이 빠지는 경지가 어떤 상태인지 느낄 수 있다. 달리 말해 힘이 있어야 힘을 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완성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완성을 가정해 현실로 도피한다. 또한, 제대로 된 힘을 주지도 않았으면서 힘을 빼는 흉내를 낸다. 이런 리더는 오래 갈 수 없다. 제대로 움켜잡아보고 내려가도 봐야 후회가 없다.
물론,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말 열심히, 제대로 힘 쏟았는데도 도달하지 못해 운을 탓하고 조직이나 상사를 원망한다. 그러나 주가 되는 기회는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기회가 도처에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시간을 쪼개 누리는 취미, 선행과 봉사로 더불어 사는  삶 등 소박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주가 될 수 있고, 움켜쥐었던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떨 때 힘을 주고, 빼야하는지 터득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산을 오를 수 없는 이유와 같다.(다음 호에 계속)  

 


(주)시이오파트너스 | 월간 시이오앤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98길 3 (갈월동) KCC IT빌딩 5층 (우 04334)
문의전화 : Tel 02-2253-1114, 02-2237-1025 | Fax 02-2232-0277
Copyright CEOPARTNERS All rights reserved. 월간<CEO&>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