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세계 금융 시장의 근간을 만들고 이룩해 온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금융의 숨은 지배자로 알려져 있다. 250년에 걸쳐 그들이 일궈낸 업적들은 하나씩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다. 세대를 걸쳐 세계 금융 시장을 장악해 온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와 지혜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원천을 살펴보면 그곳엔 항상 유대인들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정보와 인맥, 기회활용, 단결력, 아이디어 등은 대표적인 유대인들의 성공비결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최대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는 이러한 유대인의 기질을 발휘해 세계 금융의 역사이자 신화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군주의 자금 관리로 사업 종자돈을 마련
16세기부터 조상 대대로 독일의 중남부 프랑크푸르트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온 유대민족의 후손,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대인 지역 게토에서 잡화교역과 환전사업을 대를 이어 운영했다.
1744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설의 시작이 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태어난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 친척의 도움으로 유대인 금융업체 ‘시몬 볼프 오펜하이머’에 입사해 10여 년간 근무하며 국제환전과 금융에 대한 지식들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듬 해인 1768년, 그는 독일의 작은 국가 중 하나였던 헤센-카셀의 군주 아들인 빌헬름의 자금 관리를 맡게 된다. 1785년 빌헬름은 군주 자리에 오르며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국제 용병 사업으로 엄청난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영토 역시 큰 규모였다. 거대한 규모의 빌헬름의 재산을 관리하며 마이어는 상당한 커미션을 받았고, 이는 마이어가 로스차일드 왕국을 이루는 종자돈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 헤센-카셀에 대규모의 용병을 파병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용병들에게 지급된 거액의 급여와 비용 역시 마이어가 관리했고 이를 통해 그는 국제적인 금융 및 환전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에 이어 유럽 전역에서 전쟁이 이어지며 그는 전쟁자금을 빌려주는 국제 금융 사업까지 벌이며 더욱 큰 돈을 벌어들이며 재산을 더욱 불려나갔다.

 

 

런던에 은행 개업해 영국군 전쟁 자금 지원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 혼란이 올 것으로 예상한 마이어는 사업을 국제화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1798년 그의 셋째 아들 네이선에게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40억 원)의 종자존을 쥐어주며 영국 런던으로 보내, 당시 산업혁명으로 값싸게 대량 생산되고 있는 영국산 직물 수입 판로를 모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걱정하던 빌헬름이 마이어에게 자신의 자금을 해외에 은닉하도록 부탁했고 그는 이를 런던으로 안전하게 옮겨 런던에 있던 네이선에게 맡겼다. 대규모의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네이선은 1804년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런던 시티 지역에 은행을 개업했다.
네이선은 이 자금들을 은행을 통해 영국군대의 운영 자금을 융통하는 것은 물론, 영국의 동맹국들에게 대한 지원을 이어갔다. 1815년 한 해 동안 네이선의 은행을 통해 융통된 전쟁자금은 무려 98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한화 11조 원)였다고 한다. 불과 17여 년 만에 40억 원을 무려 11조로 키워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운이 따르기 시작하자 다른 곳에서도 사업의 물꼬가 트였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유럽 대륙에 영국산 공산품이 들어오지 못해 물자 부족이 심화되었고, 로스차일드는 즉각 수입 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이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로스차일드가의 사업은 나날이 성공가도를 달리며 더욱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였다.

 

 

채권으로 유럽 전역 금융 장악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더욱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셋째 아들 네이선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며 정보에 대해 ‘설령 지나가는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 그럼 그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이를 중히 여겼다.
네이선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런던에서 채권거래를 시작했다.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선은 유럽을 가로지르는 효율적인 전용 정보망을 구축했다. 그는 거금을 들여 쾌속선, 우편차 등 가장 빠르고 가장 새로운 교통설비를 사들였고, 똑똑하고 약삭빠른 정보원을 대거 고용해 그들을 유럽 각지의 전략적 요충지로 보내 정치, 군사, 통상정보부터 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밤낮없이 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전문 사신까지 양성하여 정보를 전달했다.
그 밖에도 네이선은 전문가를 통해 진작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통용되던 비밀서신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킴으로써 암호해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는 유럽 각국 정부의 역참과 특공망보다 훨씬 뛰어난 정확성과 전달력을 자랑하며 ‘모르는 게 없는 로스차일드’라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주도면밀한 준비로 1815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증권시장에서 처음으로 천금을 움켜쥐며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에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장남 암셸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차암 살로먼, 이탈리아 나폴리의 넷째 카알, 프랑스 파리의 막내 야코프 등 다섯 형제가 협력하여 새로운 금융 네트워크를 결성한 뒤 이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행하는 국채 인수를 거의 독점하여 유럽의 금융시장을 장악했다.
지금까지도 미국 연방 준비은행을 비롯해 영국의 로스차일드 은행 등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금융업을 바탕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 산업, 백화점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리오틴토를 포함한 세계 3대 광산업체와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남아프리카 드 비어스 그룹의 지분도 갖고 있으며, 와인, 생물 이름까지 뻗어간 로드차일드 가문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다.

 

경제의 기본은 화합, 협력하라!
마이어는 후손들에게 협력이라는 말을 유산으로 남겼다.
유럽 각국에 지점을 설치한 다섯 아들을 ‘다섯 개의 화살’로 비유해, 하나의 화살을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겹친 화살은 결코 쉽게 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는다는 그의 말은 경제의 기본이 화합이라는 것을 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자손들에게 돈이 아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종자돈만 쥐어주며 스스로 재산을 일구게 한 것 역시 그가 남긴 큰 교훈 중 하나이다.
혁명과 전쟁이 빈발했던 혼돈의 유럽에서 시작된 로스차일드 가문의 250년의 역사 속에는 큰 교훈과 영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에 흐름에 맞는 기회를 포착하고 그에 맞는 경영 수완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통찰은 모든 CEO들에게 귀감이 된다.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는 그들은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Editor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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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전설의 가문

Noble Family Story, RothsChild Family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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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전설의 가문

오늘 날 세계 금융 시장의 근간을 만들고 이룩해 온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금융의 숨은 지배자로 알려져 있다. 250년에 걸쳐 그들이 일궈낸 업적들은 하나씩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다. 세대를 걸쳐 세계 금융 시장을 장악해 온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와 지혜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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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의 원천을 살펴보면 그곳엔 항상 유대인들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정보와 인맥, 기회활용, 단결력, 아이디어 등은 대표적인 유대인들의 성공비결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유대계 최대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는 이러한 유대인의 기질을 발휘해 세계 금융의 역사이자 신화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군주의 자금 관리로 사업 종자돈을 마련
16세기부터 조상 대대로 독일의 중남부 프랑크푸르트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온 유대민족의 후손,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대인 지역 게토에서 잡화교역과 환전사업을 대를 이어 운영했다.
1744년 로스차일드 가문의 전설의 시작이 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태어난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 친척의 도움으로 유대인 금융업체 ‘시몬 볼프 오펜하이머’에 입사해 10여 년간 근무하며 국제환전과 금융에 대한 지식들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듬 해인 1768년, 그는 독일의 작은 국가 중 하나였던 헤센-카셀의 군주 아들인 빌헬름의 자금 관리를 맡게 된다. 1785년 빌헬름은 군주 자리에 오르며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국제 용병 사업으로 엄청난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영토 역시 큰 규모였다. 거대한 규모의 빌헬름의 재산을 관리하며 마이어는 상당한 커미션을 받았고, 이는 마이어가 로스차일드 왕국을 이루는 종자돈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해 헤센-카셀에 대규모의 용병을 파병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용병들에게 지급된 거액의 급여와 비용 역시 마이어가 관리했고 이를 통해 그는 국제적인 금융 및 환전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에 이어 유럽 전역에서 전쟁이 이어지며 그는 전쟁자금을 빌려주는 국제 금융 사업까지 벌이며 더욱 큰 돈을 벌어들이며 재산을 더욱 불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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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은행 개업해 영국군 전쟁 자금 지원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 혼란이 올 것으로 예상한 마이어는 사업을 국제화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
1798년 그의 셋째 아들 네이선에게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40억 원)의 종자존을 쥐어주며 영국 런던으로 보내, 당시 산업혁명으로 값싸게 대량 생산되고 있는 영국산 직물 수입 판로를 모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걱정하던 빌헬름이 마이어에게 자신의 자금을 해외에 은닉하도록 부탁했고 그는 이를 런던으로 안전하게 옮겨 런던에 있던 네이선에게 맡겼다. 대규모의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네이선은 1804년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런던 시티 지역에 은행을 개업했다.
네이선은 이 자금들을 은행을 통해 영국군대의 운영 자금을 융통하는 것은 물론, 영국의 동맹국들에게 대한 지원을 이어갔다. 1815년 한 해 동안 네이선의 은행을 통해 융통된 전쟁자금은 무려 98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한화 11조 원)였다고 한다. 불과 17여 년 만에 40억 원을 무려 11조로 키워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운이 따르기 시작하자 다른 곳에서도 사업의 물꼬가 트였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유럽 대륙에 영국산 공산품이 들어오지 못해 물자 부족이 심화되었고, 로스차일드는 즉각 수입 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이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로스차일드가의 사업은 나날이 성공가도를 달리며 더욱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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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으로 유럽 전역 금융 장악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더욱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셋째 아들 네이선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며 정보에 대해 ‘설령 지나가는 바람이라 할지라도 그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 그럼 그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이를 중히 여겼다.
네이선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런던에서 채권거래를 시작했다.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선은 유럽을 가로지르는 효율적인 전용 정보망을 구축했다. 그는 거금을 들여 쾌속선, 우편차 등 가장 빠르고 가장 새로운 교통설비를 사들였고, 똑똑하고 약삭빠른 정보원을 대거 고용해 그들을 유럽 각지의 전략적 요충지로 보내 정치, 군사, 통상정보부터 사회 이슈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밤낮없이 정보를 수집했다. 그는 전문 사신까지 양성하여 정보를 전달했다.
그 밖에도 네이선은 전문가를 통해 진작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통용되던 비밀서신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킴으로써 암호해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는 유럽 각국 정부의 역참과 특공망보다 훨씬 뛰어난 정확성과 전달력을 자랑하며 ‘모르는 게 없는 로스차일드’라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주도면밀한 준비로 1815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증권시장에서 처음으로 천금을 움켜쥐며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에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장남 암셸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차암 살로먼, 이탈리아 나폴리의 넷째 카알, 프랑스 파리의 막내 야코프 등 다섯 형제가 협력하여 새로운 금융 네트워크를 결성한 뒤 이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행하는 국채 인수를 거의 독점하여 유럽의 금융시장을 장악했다.
지금까지도 미국 연방 준비은행을 비롯해 영국의 로스차일드 은행 등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금융업을 바탕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우라늄, 레저 산업, 백화점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리오틴토를 포함한 세계 3대 광산업체와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남아프리카 드 비어스 그룹의 지분도 갖고 있으며, 와인, 생물 이름까지 뻗어간 로드차일드 가문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다.

 

경제의 기본은 화합, 협력하라!
마이어는 후손들에게 협력이라는 말을 유산으로 남겼다.
유럽 각국에 지점을 설치한 다섯 아들을 ‘다섯 개의 화살’로 비유해, 하나의 화살을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겹친 화살은 결코 쉽게 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는다는 그의 말은 경제의 기본이 화합이라는 것을 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자손들에게 돈이 아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종자돈만 쥐어주며 스스로 재산을 일구게 한 것 역시 그가 남긴 큰 교훈 중 하나이다.
혁명과 전쟁이 빈발했던 혼돈의 유럽에서 시작된 로스차일드 가문의 250년의 역사 속에는 큰 교훈과 영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에 흐름에 맞는 기회를 포착하고 그에 맞는 경영 수완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통찰은 모든 CEO들에게 귀감이 된다.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는 그들은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Editor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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