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9일, 중국 최고의 부자가 탄생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은 무려 241조 원,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은 순식간에 26조 원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 전직 영어 교사였던 그가 어떻게 이런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왜소한 체구에 작은 키의 사나이는 넘치는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오며 중국 경제에 한 획을 그은 거인이 되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시작한다.

 

거듭된 실패는 거듭되는 도전으로 이겨낸다
마윈은 1964년 저장성 항저우 시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 지방조직의 행정조직 간부를 지낸 탓에 그의 집안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어려운 가정 속에서 공부에 대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영어 공부에 몰두하게 된다. 그 시절 학원은 커녕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전무했지만, 그는 항저우 호텔을 매일 같이 찾으며 무려 9년 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하나에만 몰두했기 때문까? 그는 대학 입시에도 번번히 낙방했고,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학 영어 전공으로 입학해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에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30개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경찰 모집에도 떨어졌으며 하다 못해 KFC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지 못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항저우의 한 대학 영어 강사. 당시 마윈의 월급은 91위안, 한화로 15,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는 월급과 틈틈이 한 번역으로 종잣돈을 모아 강단을 떠나 사업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1992년 31살 나이에 마윈은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으로 평가받는 통역회사 하이보를 차렸다. 영어 실력만 있고 경영 경험이 부족했던 그가 첫 창업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 무리한 사무실 운영과 회계직원의 횡령 등이 이어졌고, 비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1995년 미국에서 인터넷을 접하고 인터넷 불모지인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인터넷 관련 기업을 창업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윈은 다시 도전했다. 1999년, 17명의 동료들과 함께 중국 최초의 B2B 사이트인 알리바바닷컴을 개설했다.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 주인공
창업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당시 미국 이베이가 중국에 진출해 온라인 시장의 95%를 점령하고 있었다.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마윈이 선택한 것은 새로운 마케팅 전략. 그는 3년간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치며 이베이와의 차별화 경쟁을 벌였고, 결국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 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된다. 그리고 2006년, 이베이는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다.
50만 위안, 한화 850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중국 최고의 기업이 되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하며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사업 초기 알리바바는 기업 간 거래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이후 2003년 알리바바는 기업 대 개인(B2C)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로 사업 중심을 옮겨 대성공을 거뒀다.
2004년 내놓은 전자결제 플랫폼인 즈푸바오(알리페이)도 타오바오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면서 중국 전자결제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백화점부터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QR코드를 활용한 휴대전화 전자결제가 대세다. 알리페이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중국에서 기본적인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 알리바바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새로운 역사를 쓰며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계 IT 업계 4위 기업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마윈은 이 거대한 인터넷 상거래 기업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다. 아시아를 움직이던 작은 거인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시작, 교육 자선 사업
2014년 알리바바가 미국 주식에 상장하면서 마윈은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지난 해 포브스가 발표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재산은 386억 달러(43조 원)로 중국 내 3위에 해당한다.
알리바바는 여전히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이며, 19년 전 마윈을 포함해 고작 18명이었던 직원은 86,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매일 평균 6,000만 건에 달하는 주문이 알리바바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사업 분야는 인공지능(AI),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등으로 더욱 방대해졌다.
마윈은 “나는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 뒤에 있는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그의 꿈으로 세상을 바꿨고, 자신의 인생 역시 새롭게 써내려갔다.
2018년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작 앞에 서있다. 올해로 54세가 된 마윈은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나 교육 자선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은퇴는 또 다른 시작, 교육에 초점을 두고 더 많은 시간과 재산을 쓰고 싶다”라고 간단한 소감 및 향후 계획을 밝힌 그는 마윈재단을 설립해 중국 시골의 교육을 개선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는 빌 게이츠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ditor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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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Story, Jack Ma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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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중국 최고의 부자가 탄생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은 무려 241조 원,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은 순식간에 26조 원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 전직 영어 교사였던 그가 어떻게 이런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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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체구에 작은 키의 사나이는 넘치는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오며 중국 경제에 한 획을 그은 거인이 되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시작한다.

 

거듭된 실패는 거듭되는 도전으로 이겨낸다
마윈은 1964년 저장성 항저우 시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 지방조직의 행정조직 간부를 지낸 탓에 그의 집안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어려운 가정 속에서 공부에 대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면서 영어 공부에 몰두하게 된다. 그 시절 학원은 커녕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전무했지만, 그는 항저우 호텔을 매일 같이 찾으며 무려 9년 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하나에만 몰두했기 때문까? 그는 대학 입시에도 번번히 낙방했고,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학 영어 전공으로 입학해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에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30개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경찰 모집에도 떨어졌으며 하다 못해 KFC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지 못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항저우의 한 대학 영어 강사. 당시 마윈의 월급은 91위안, 한화로 15,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는 월급과 틈틈이 한 번역으로 종잣돈을 모아 강단을 떠나 사업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1992년 31살 나이에 마윈은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으로 평가받는 통역회사 하이보를 차렸다. 영어 실력만 있고 경영 경험이 부족했던 그가 첫 창업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 무리한 사무실 운영과 회계직원의 횡령 등이 이어졌고, 비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1995년 미국에서 인터넷을 접하고 인터넷 불모지인 중국에서 다시 한 번 인터넷 관련 기업을 창업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윈은 다시 도전했다. 1999년, 17명의 동료들과 함께 중국 최초의 B2B 사이트인 알리바바닷컴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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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 주인공
창업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당시 미국 이베이가 중국에 진출해 온라인 시장의 95%를 점령하고 있었다. 거대 기업과의 경쟁에서 마윈이 선택한 것은 새로운 마케팅 전략. 그는 3년간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치며 이베이와의 차별화 경쟁을 벌였고, 결국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 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된다. 그리고 2006년, 이베이는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다.
50만 위안, 한화 850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중국 최고의 기업이 되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하며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사업 초기 알리바바는 기업 간 거래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었다. 이후 2003년 알리바바는 기업 대 개인(B2C)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로 사업 중심을 옮겨 대성공을 거뒀다.
2004년 내놓은 전자결제 플랫폼인 즈푸바오(알리페이)도 타오바오와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면서 중국 전자결제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백화점부터 재래시장에 이르기까지 QR코드를 활용한 휴대전화 전자결제가 대세다. 알리페이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중국에서 기본적인 경제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 알리바바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새로운 역사를 쓰며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계 IT 업계 4위 기업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마윈은 이 거대한 인터넷 상거래 기업을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다. 아시아를 움직이던 작은 거인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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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작, 교육 자선 사업
2014년 알리바바가 미국 주식에 상장하면서 마윈은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지난 해 포브스가 발표에 따르면 현재 그의 재산은 386억 달러(43조 원)로 중국 내 3위에 해당한다.
알리바바는 여전히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이며, 19년 전 마윈을 포함해 고작 18명이었던 직원은 86,000여명으로 늘어났다. 매일 평균 6,000만 건에 달하는 주문이 알리바바를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사업 분야는 인공지능(AI),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등으로 더욱 방대해졌다.
마윈은 “나는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 뒤에 있는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그의 꿈으로 세상을 바꿨고, 자신의 인생 역시 새롭게 써내려갔다.
2018년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작 앞에 서있다. 올해로 54세가 된 마윈은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나 교육 자선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은퇴는 또 다른 시작, 교육에 초점을 두고 더 많은 시간과 재산을 쓰고 싶다”라고 간단한 소감 및 향후 계획을 밝힌 그는 마윈재단을 설립해 중국 시골의 교육을 개선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는 빌 게이츠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ditor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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