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 둘러싸인 대서양에 가까운 바다다. 선원들에게는 북극의 바람이 밀려오는 가혹한 삶의 무대지만 국민들에겐 각종 수산물이 풍부한 세계 4대 어장 중 하나이자 천연가스와 석유가 생산되는 축복의 바다다.

 

 

유럽의 바다하면 지중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유럽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북해다. 북해 연안 국가들이 바다를 어떻게 성공의 장으로 활용했는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내리자면 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중소기업이 세계를 호령하는 독일
375년경 그 유명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무너져 가던 로마제국에 결정적 피해를 가져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중앙집권을 위해 용병의 비율을 90%까지 늘렸고, 이들 대부분은 게르만족이었다. 당시 북쪽의 게르만족은 부족별로 자유롭게 지내는 야만족이었다. 이들이 훗날 유럽인의 시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흉노족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족은 지금의 유럽의 모태가 되는 국가들을 건국하게 되는데, 모두 봉건제도 아래 유지된다.
국왕은 영주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영주는 기사에서 다시 토지를 나눠준다. 농노는 이 토지에서 절반 이상 세금을 위한 노동을 하고 나머지를 본인의 생계를 위해 종사한다. 하지만 이런 굴레를 벗어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기술자들이다. 그들이 모인 곳은 프랑크푸르트, 쾰른, 마인츠 등으로, 이곳은 서유럽 최초의 도시로 발전했다. 현대 독일의 주요 도시이기도 한 여기에서 농노의 생활 대신 기술자로서 부를 축적했고, 영주의 간섭으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졌다. 특히, 그들은 창의적인 기술이 경쟁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기술이 봉건제도를 무너트리고 도시의 탄생과 기업가 정신을 일으킨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기술자들이 모여 세운 독일은 현재 유럽 1위의 경제 강국이다. BMW, 포르쉐, 아디다스 등은 모두 기술 중심의 독일 기업들이다. 201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조사한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상품 개수 1위는 독일(142개), 2위 중국(107개), 3위 미국(97개)의 순이다. 기술력이 우수한 나라, 제조업이 강한 나라,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라는 독일의 이미지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이킹의 후예, 노르웨이
사실 게르만족이 북방의 야만족이었다고 하지만 더 북쪽으로 가면 바이킹이 살고 있었다. 바이킹은 장자 계승의 일부다처제 관습이 지배하는 부족이다. 장자는 재산을 상속받아 여러 아내를 거느리며 살지만 그렇지 못한 부족은 혹독한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따라서 해적은 해볼 만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9~10세기 동안을 흔히 ‘바이킹 시대’라 부른다. 바이킹은 유럽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을 사용했다. 갑옷을 두르고 진용을 갖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떼로 몰려가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북해 근처의 마을들은 바이킹의 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상비군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주가 군대를 모아 파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이때는 바이킹의 약탈이 끝난 후였다. 바이킹은 전투에서 화려한 치장이나 기술을 구사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효과적인 전투가 승전보를 가져왔다. 2018년 월드컵에서 아이슬란드가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은 비결 역시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다. 슈퍼스타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행했던 것처럼 간결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국가에게 북해는 척박한 땅을 벗어나 세계로 이끌어주는 은혜의 바다였다. 실제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바이킹이 사용한 지도를 참고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해상 활동을 펼쳤는지 알 수 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의 바이킹 후예들은 경제, 정치 분야에서도 귀감이 된다. 복지국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보면,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낮은 임금 격차를 통해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직업 자체에서 보람을 찾고 업무에 순수하게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민족적 강점이 드러난다.

 

동인도회사의 시작, 네덜란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세계 무역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꿨다. 서유럽의 주요 하천들은 네덜란드 인근의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항구도시들이 탄생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북해로 이어지는 발트해 운송의 75%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들은 표준화된 교역소를 설립했는데, 1609년에는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열렸다. 대규모 무역에는 담보가 필요했고 네덜란드 정부가 보증하는 차용증은 국제 무역상에게 편리하면서도 신뢰가 높은 거래 방법이었다.
자원이 부족하고 강력한 군대도 없었던 네덜란드는 북해를 기반으로 국제무역을 통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다. 이후 14개의 무역회사를 통합,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를 설립해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상품과 노예무역을 책임지게 된다. 동인도회사의 본사가 영국에 있어 영국이 설립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가 설립의 주체이며, 이를 통해 세계 최초의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중개무역으로 네덜란드가 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영국과의 북해 유전 분쟁을 로얄 더치쉘이라는 세계 1위 석유 생산기업을 합작 운영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기지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갖는 네덜란드의 역사는 언어를 중시하는 교육관과도 연결된다. 네덜란드인들은 초등교육에서부터 영어와 불어를 의무적으로 학습한다. 기본적으로 3개 국어가 가능한 셈이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성공적인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지금도 네덜란드인들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 각지에서 활약을 하는 것은 선조들이 일깨워 준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Editor 김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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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연안 국가의 성공신화

Face to Face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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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연안 국가의 성공신화

북해는 영국,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 둘러싸인 대서양에 가까운 바다다. 선원들에게는 북극의 바람이 밀려오는 가혹한 삶의 무대지만 국민들에겐 각종 수산물이 풍부한 세계 4대 어장 중 하나이자 천연가스와 석유가 생산되는 축복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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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바다하면 지중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유럽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북해다. 북해 연안 국가들이 바다를 어떻게 성공의 장으로 활용했는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내리자면 신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중소기업이 세계를 호령하는 독일
375년경 그 유명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무너져 가던 로마제국에 결정적 피해를 가져왔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중앙집권을 위해 용병의 비율을 90%까지 늘렸고, 이들 대부분은 게르만족이었다. 당시 북쪽의 게르만족은 부족별로 자유롭게 지내는 야만족이었다. 이들이 훗날 유럽인의 시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흉노족을 피해 남하한 게르만족은 지금의 유럽의 모태가 되는 국가들을 건국하게 되는데, 모두 봉건제도 아래 유지된다.
국왕은 영주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영주는 기사에서 다시 토지를 나눠준다. 농노는 이 토지에서 절반 이상 세금을 위한 노동을 하고 나머지를 본인의 생계를 위해 종사한다. 하지만 이런 굴레를 벗어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기술자들이다. 그들이 모인 곳은 프랑크푸르트, 쾰른, 마인츠 등으로, 이곳은 서유럽 최초의 도시로 발전했다. 현대 독일의 주요 도시이기도 한 여기에서 농노의 생활 대신 기술자로서 부를 축적했고, 영주의 간섭으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졌다. 특히, 그들은 창의적인 기술이 경쟁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기술이 봉건제도를 무너트리고 도시의 탄생과 기업가 정신을 일으킨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기술자들이 모여 세운 독일은 현재 유럽 1위의 경제 강국이다. BMW, 포르쉐, 아디다스 등은 모두 기술 중심의 독일 기업들이다. 201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조사한 세계시장 점유율 3위 이내 상품 개수 1위는 독일(142개), 2위 중국(107개), 3위 미국(97개)의 순이다. 기술력이 우수한 나라, 제조업이 강한 나라,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라는 독일의 이미지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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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후예, 노르웨이
사실 게르만족이 북방의 야만족이었다고 하지만 더 북쪽으로 가면 바이킹이 살고 있었다. 바이킹은 장자 계승의 일부다처제 관습이 지배하는 부족이다. 장자는 재산을 상속받아 여러 아내를 거느리며 살지만 그렇지 못한 부족은 혹독한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따라서 해적은 해볼 만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9~10세기 동안을 흔히 ‘바이킹 시대’라 부른다. 바이킹은 유럽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을 사용했다. 갑옷을 두르고 진용을 갖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떼로 몰려가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북해 근처의 마을들은 바이킹의 습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상비군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주가 군대를 모아 파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이때는 바이킹의 약탈이 끝난 후였다. 바이킹은 전투에서 화려한 치장이나 기술을 구사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효과적인 전투가 승전보를 가져왔다. 2018년 월드컵에서 아이슬란드가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은 비결 역시 이런 전통에서 유래한다. 슈퍼스타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행했던 것처럼 간결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국가에게 북해는 척박한 땅을 벗어나 세계로 이끌어주는 은혜의 바다였다. 실제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바이킹이 사용한 지도를 참고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해상 활동을 펼쳤는지 알 수 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의 바이킹 후예들은 경제, 정치 분야에서도 귀감이 된다. 복지국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보면,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낮은 임금 격차를 통해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직업 자체에서 보람을 찾고 업무에 순수하게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민족적 강점이 드러난다.

 

동인도회사의 시작, 네덜란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세계 무역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꿨다. 서유럽의 주요 하천들은 네덜란드 인근의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항구도시들이 탄생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북해로 이어지는 발트해 운송의 75%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들은 표준화된 교역소를 설립했는데, 1609년에는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열렸다. 대규모 무역에는 담보가 필요했고 네덜란드 정부가 보증하는 차용증은 국제 무역상에게 편리하면서도 신뢰가 높은 거래 방법이었다.
자원이 부족하고 강력한 군대도 없었던 네덜란드는 북해를 기반으로 국제무역을 통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다. 이후 14개의 무역회사를 통합,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를 설립해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의 상품과 노예무역을 책임지게 된다. 동인도회사의 본사가 영국에 있어 영국이 설립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가 설립의 주체이며, 이를 통해 세계 최초의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중개무역으로 네덜란드가 성장한 배경을 살펴보면, 영국과의 북해 유전 분쟁을 로얄 더치쉘이라는 세계 1위 석유 생산기업을 합작 운영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기지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갖는 네덜란드의 역사는 언어를 중시하는 교육관과도 연결된다. 네덜란드인들은 초등교육에서부터 영어와 불어를 의무적으로 학습한다. 기본적으로 3개 국어가 가능한 셈이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성공적인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지금도 네덜란드인들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 각지에서 활약을 하는 것은 선조들이 일깨워 준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Editor 김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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