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현진숙 대표는 자신의 유통기업 미리어드(Myriad) 법인을 설립하고 기업경영인으로 홀로서기를 공식화했다. 음파진동칫솔 브랜드 메가텐(MEGA TEN)의 국내 독점총판에 주력한 1년여간 사업은 매출규모 등에서 일견 성공적이다. 그리고 회심의 역작 ‘도로시’를 출시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연작시 <홀로서기> 중에 나오는  구절처럼 현진숙 대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많은 금전적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장사’는 배격한다. 금전적 고수익보다는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닌 올바른 ‘사업’ 경영에 애정을 쏟고 있다.
그와 같은 경영마인드와 사업방침은 역설적으로 쾌조의 매출 실적을 낳았다. 메가텐 음파진동칫솔이 진입한 유통채널에서 키즈 전동칫솔 카테고리 단일품목 1위 매출을 기록한 것. 현 대표가 미리어드를 설립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지난 연말 집계다.
“제조본사의 지원과는 별도로 우리 미리어드만의 유통·마케팅 역량으로 1년여 만에 목표로 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온 것으로 자체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만족 정도는 아니겠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그 자체로는 안심할 수 있는 정도? 그렇게 소회를 품게 되네요.”

 

메가텐 제조사 임원서 분사 독립
현 대표가 언급한 ‘제조본사’란 메가텐 브랜드를 양산하는 원스타인터내셔널을 지칭한다. 이곳에서 그는 분리 법인을 설립해 독립하기 직전까지 영업·마케팅을 총괄하는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상품기획부터 양산, 유통채널 입점까지 총체적 업무를 도맡으며 그 자신 역시 독립해 자기회사를 시작할 수 있는 운명 같은 계기도 됐다.
그는 “제조본사의 해외총판이 14개국에 있는데, 본국인 한국의 시장에서 성과가 나와야만 그들 총판들이 적극성을 띤다”고 들려줬다. 이에 따라 그는 한국에서 메가텐의 매출과 브랜드 위상 제고를 위해 총판사 후보들을 물색해야 했다.
“칫솔이라는 레드오션에서 메가텐 음파진동칫솔이 경쟁력을 갖고 성공할 수 있을까? 총판 후보사 다들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었죠.”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할 정도로 제품을 잘 알고 있고,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그가 결국 총판을 맡기로 하고 회사를 세우게 됐다. 이는 소비자에게 익숙한 글로벌 대기업 제품들을 제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냥 칫솔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선망 제품으로, 소비자의 카테고리 인식이 전환될 아이템으로 마케팅하려고 노력했어요.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레드오션에 속하는 칫솔은 광활한 블루오션이 새롭게 열릴 거예요.”

 

엘리트코스 밟은 ‘엄친딸’의 고뇌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꿰뚫는 통찰력과 시장상황을 파악하는 분석력은 10년 이상 마케팅 리서처로 일한 현 대표의 커리어와도 관련 깊을 수 있다. 그리고 회사대표 경영자로서의 적성은 기업가 집안에서 자란 그의 성장 배경을 들어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75년생인 현 대표는 “저는 한국사회에서 얘기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고 덤덤하게 고백했다. 이내 “살아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타인에게 그는 요샛말로 ‘엄친딸’이다. 대원외고를 나왔고,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로필상 겉으로 나타난 건 그 사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요.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방황을 좀 했어요. 제가 원했던 학과 전공이 아니었던 점도 있었죠.”
그는 조심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학교를 왜 다녀야 되는가, 라는 회의도 있었어요. 제가 가야 할 길, 진로모색에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그 당시 겪었던 자의식적 고민에서부터 길을 찾고 찾아 지금 기업 경영자까지 온 것 같기도 해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입학 전까지 의사라는 꿈 외에는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입학한 의류직물학과도 2지망으로 지원한 곳이었다. 방황하던 시절 그는 영국어학연수에서 돌아와 휴학생 신분으로 동대문 의류매장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그를 마케팅의 길로 이끈 결정적 선회지점이었다.
“IMF가 터지고 나서 1998년쯤에 동대문 쇼핑지역에 밀리오레가 처음 생겼을 때예요. 제가 의류직물학과니까 친구가 거기서 의류매장을 같이 해보자, 고 권유했어요. 하다 보니까 너무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직원을 두 명 더 두고 매장을 하나 더 내고, 이러면서 저는 복학을 했는데도 계속 매장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일에 치였죠.”

 

 

장기 지속가능한 사업경영 과제
결국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데리고 있던 직원들한테 의류매장을 매도하고 그는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내내 마음에 남아 있던 테마, 바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경영’이었다.
대학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무역회사에 취업해 다니면서도 이 과제는 내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착한 딸이기만 했던 그는 결국 부모님께 “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을 전공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리고 만다.
석사 취득 후 마케팅 리서처로 일하며 시장과 소비자 조사를 기반으로 얻어낸 인사이트로 브랜드 전략을 제시하는 컨설턴트로 내공을 다졌고, 닐슨컴퍼니코리아 CPG팀장을 끝으로 기업실무 현장으로 돌아왔다. 한 제조사에서 브랜드매니저로 근무하던 그는 손재훈 대표의 지속적 영입제의와 부친의 권유로 원스타인터내셔널에 합류했다.
지난 2017년 작고한 부친은 유니버스교역상사 현상희 전 대표다. 고 현 전 대표는 3녀 1남 중 둘째 딸이며 현재 한 회사대표인 그에게 아버지, 선배기업인, 그리고 스승과 같은 존재다. 독학으로 4개 국어를 구사했던 부친은 항상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가 의예과 지망생이면서도 외고에 진학한 이유다.
“아버님께서 무역회사를 경영하셨어요. 그렇게 크게는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70·80년대 무역호재였을 때 아버지가 한국 총판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많이 배웠죠.”
현진숙 대표는 “아버지께서 외국 바이어들을 집으로 초대하셔서 그들을 매너 있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교과서처럼 정식으로 가르쳐주신 건 아니지만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부친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회심의 역작 ‘도로시’ 반응 기대
갓 1년 넘은 신생기업으로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둔 현진숙 대표는 이제부터 사실상 진검승부에 들어간다. 제조사 재직시절 그가 최초 기획단계부터 상품화까지 모두 관여했던 신제품 ‘도로시(DOROTHY)’가 지난 2월 출시됐기 때문이다.
현 대표는 “이렇게 도로시를 기점으로 콘셉트 상품 라인업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소비자의 니즈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더욱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제품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공개할 수는 없고요.”
이처럼 현 대표는 시장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한 ‘장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애정을 쏟고 심혈을 기울인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업’을 추구한다.
“장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당장 막 돈 엄청나게 벌고 사업체 막 키우고, 그럴 수는 있어요. 그러면 브랜드가 망가질 수 있죠. 또 기업 시스템이 부조리하게 무너질 수 있죠. 욕심 내지 않고 사업을 장기적으로 밟아나가려고 합니다.”

 


Editor 김진환   Photographer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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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어드, 메가텐 음파칫솔에 우아함 입히다

Focus Interview, 미리어드(Myriad) 현진숙 대표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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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어드, 메가텐 음파칫솔에 우아함 입히다

2017년 11월 28일. 현진숙 대표는 자신의 유통기업 미리어드(Myriad) 법인을 설립하고 기업경영인으로 홀로서기를 공식화했다. 음파진동칫솔 브랜드 메가텐(MEGA TEN)의 국내 독점총판에 주력한 1년여간 사업은 매출규모 등에서 일견 성공적이다. 그리고 회심의 역작 ‘도로시’를 출시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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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연작시 <홀로서기> 중에 나오는  구절처럼 현진숙 대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많은 금전적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장사’는 배격한다. 금전적 고수익보다는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닌 올바른 ‘사업’ 경영에 애정을 쏟고 있다.
그와 같은 경영마인드와 사업방침은 역설적으로 쾌조의 매출 실적을 낳았다. 메가텐 음파진동칫솔이 진입한 유통채널에서 키즈 전동칫솔 카테고리 단일품목 1위 매출을 기록한 것. 현 대표가 미리어드를 설립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지난 연말 집계다.
“제조본사의 지원과는 별도로 우리 미리어드만의 유통·마케팅 역량으로 1년여 만에 목표로 했던 만큼의 성과가 나온 것으로 자체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주 큰 만족 정도는 아니겠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그 자체로는 안심할 수 있는 정도? 그렇게 소회를 품게 되네요.”

 

메가텐 제조사 임원서 분사 독립
현 대표가 언급한 ‘제조본사’란 메가텐 브랜드를 양산하는 원스타인터내셔널을 지칭한다. 이곳에서 그는 분리 법인을 설립해 독립하기 직전까지 영업·마케팅을 총괄하는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상품기획부터 양산, 유통채널 입점까지 총체적 업무를 도맡으며 그 자신 역시 독립해 자기회사를 시작할 수 있는 운명 같은 계기도 됐다.
그는 “제조본사의 해외총판이 14개국에 있는데, 본국인 한국의 시장에서 성과가 나와야만 그들 총판들이 적극성을 띤다”고 들려줬다. 이에 따라 그는 한국에서 메가텐의 매출과 브랜드 위상 제고를 위해 총판사 후보들을 물색해야 했다.
“칫솔이라는 레드오션에서 메가텐 음파진동칫솔이 경쟁력을 갖고 성공할 수 있을까? 총판 후보사 다들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었죠.”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할 정도로 제품을 잘 알고 있고,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그가 결국 총판을 맡기로 하고 회사를 세우게 됐다. 이는 소비자에게 익숙한 글로벌 대기업 제품들을 제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냥 칫솔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선망 제품으로, 소비자의 카테고리 인식이 전환될 아이템으로 마케팅하려고 노력했어요.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레드오션에 속하는 칫솔은 광활한 블루오션이 새롭게 열릴 거예요.”

 

엘리트코스 밟은 ‘엄친딸’의 고뇌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꿰뚫는 통찰력과 시장상황을 파악하는 분석력은 10년 이상 마케팅 리서처로 일한 현 대표의 커리어와도 관련 깊을 수 있다. 그리고 회사대표 경영자로서의 적성은 기업가 집안에서 자란 그의 성장 배경을 들어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1975년생인 현 대표는 “저는 한국사회에서 얘기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고 덤덤하게 고백했다. 이내 “살아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타인에게 그는 요샛말로 ‘엄친딸’이다. 대원외고를 나왔고,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로필상 겉으로 나타난 건 그 사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요.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방황을 좀 했어요. 제가 원했던 학과 전공이 아니었던 점도 있었죠.”
그는 조심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적성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학교를 왜 다녀야 되는가, 라는 회의도 있었어요. 제가 가야 할 길, 진로모색에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그 당시 겪었던 자의식적 고민에서부터 길을 찾고 찾아 지금 기업 경영자까지 온 것 같기도 해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입학 전까지 의사라는 꿈 외에는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입학한 의류직물학과도 2지망으로 지원한 곳이었다. 방황하던 시절 그는 영국어학연수에서 돌아와 휴학생 신분으로 동대문 의류매장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그를 마케팅의 길로 이끈 결정적 선회지점이었다.
“IMF가 터지고 나서 1998년쯤에 동대문 쇼핑지역에 밀리오레가 처음 생겼을 때예요. 제가 의류직물학과니까 친구가 거기서 의류매장을 같이 해보자, 고 권유했어요. 하다 보니까 너무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직원을 두 명 더 두고 매장을 하나 더 내고, 이러면서 저는 복학을 했는데도 계속 매장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면서 일에 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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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지속가능한 사업경영 과제
결국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데리고 있던 직원들한테 의류매장을 매도하고 그는 공부하는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내내 마음에 남아 있던 테마, 바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경영’이었다.
대학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무역회사에 취업해 다니면서도 이 과제는 내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착한 딸이기만 했던 그는 결국 부모님께 “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을 전공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리고 만다.
석사 취득 후 마케팅 리서처로 일하며 시장과 소비자 조사를 기반으로 얻어낸 인사이트로 브랜드 전략을 제시하는 컨설턴트로 내공을 다졌고, 닐슨컴퍼니코리아 CPG팀장을 끝으로 기업실무 현장으로 돌아왔다. 한 제조사에서 브랜드매니저로 근무하던 그는 손재훈 대표의 지속적 영입제의와 부친의 권유로 원스타인터내셔널에 합류했다.
지난 2017년 작고한 부친은 유니버스교역상사 현상희 전 대표다. 고 현 전 대표는 3녀 1남 중 둘째 딸이며 현재 한 회사대표인 그에게 아버지, 선배기업인, 그리고 스승과 같은 존재다. 독학으로 4개 국어를 구사했던 부친은 항상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가 의예과 지망생이면서도 외고에 진학한 이유다.
“아버님께서 무역회사를 경영하셨어요. 그렇게 크게는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70·80년대 무역호재였을 때 아버지가 한국 총판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많이 배웠죠.”
현진숙 대표는 “아버지께서 외국 바이어들을 집으로 초대하셔서 그들을 매너 있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교과서처럼 정식으로 가르쳐주신 건 아니지만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부친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회심의 역작 ‘도로시’ 반응 기대
갓 1년 넘은 신생기업으로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둔 현진숙 대표는 이제부터 사실상 진검승부에 들어간다. 제조사 재직시절 그가 최초 기획단계부터 상품화까지 모두 관여했던 신제품 ‘도로시(DOROTHY)’가 지난 2월 출시됐기 때문이다.
현 대표는 “이렇게 도로시를 기점으로 콘셉트 상품 라인업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소비자의 니즈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접목시켜 더욱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제품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았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공개할 수는 없고요.”
이처럼 현 대표는 시장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한 ‘장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애정을 쏟고 심혈을 기울인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업’을 추구한다.
“장사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당장 막 돈 엄청나게 벌고 사업체 막 키우고, 그럴 수는 있어요. 그러면 브랜드가 망가질 수 있죠. 또 기업 시스템이 부조리하게 무너질 수 있죠. 욕심 내지 않고 사업을 장기적으로 밟아나가려고 합니다.”

 


Editor 김진환   Photographer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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