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준비하기도 쉽지 않은 규모의 행사와 이벤트를 한 달에 서너 건씩 진행하는 기업이 있다. BTL 마케팅 및 MICE 전문 기업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상수동 스완 사무실에서 만났다.

 

 

호수를 떠다니는 백조의 모습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지만 물속에 잠긴 백조의 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부지런히 움직인다. 기업의 행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예산과 인력,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이벤트는 언제나 완벽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태프가 있다. 스완커뮤니케이션은 기업 회의, 컨벤션, 사내 행사, 정부 프로젝트, 세일즈 마케팅 등 고객과 대면하는 최접점에서 에이전시 업무를 수행하는 MICE 및 BTL 서비스 전문기업이다.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는 세월이 지날수록 BTL 마케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마케팅에서 BTL은 매체 광고나 옥외 광고 이후에 남는 예산을 활용하는 부수적인 개념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BTL 마케팅에 대한 예산이 따로 배정될 뿐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 광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는 언제나 예스맨
기업이 BTL 마케팅을 직접 진행하지 않고 대행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일은 많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박람회, 체험 이벤트, 플래그십 운영, 고객 초청 행사 등 고객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별난 에피소드, 부정적으로 말하면 머리 아픈 일들이다. 경품으로 받은 상품을 다른 제품으로 바꿔 달라고 우기거나, 행사장에서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졌다며 치료비 이상의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주최 측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현장에서 발생합니다. 스완은 오랜 경험으로 쌓아온 노하우로 상황을 대처할 뿐 아니라 아주 짧고 예산이 적은 행사에도 가급적 보험을 들어 리스크를 줄이고 있습니다.”
기업의 의뢰를 받아 고객들을 만나는 에이전시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둘이 된다. 두 고객이 모두 만족스러운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스완커뮤니케이션에서는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클라이언트에게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예산이 부족해 보이지만 예산을 책정하는 쪽에서는 큰돈이에요. 클라이언트가 행사에 대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기획사나 대행사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게 되면 추가 예산을 받거나 다른 기획을 포기하지만 저희는 대부분 요구를 들어드립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노하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완커뮤니케이션이 상황에 맞춰 실행할 수 있는 행사 레퍼토리를 다른 기획사에 비해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완커뮤니케이션이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행사를 진행하거나 같은 행사라도 예산을 적게 사용하는 노하우를 가진 이유는 꾸준히 현장에서 일하며 단계를 밟아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대부분 페이퍼 작업을 하고 이론적인 것에 특화되어 있지만 저희는 많은 현장 노하우로 실무에 능합니다. 더불어 기획사와 밴더가 아닌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온 끈끈함이 있기에 더욱 물 흐르듯 행사를 진행하죠.”

 

2016 현대자동차 잡페어

 

2018 국제 형사법 컨퍼런스

 

현장에 특화된 경험의 힘
양희정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즈음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아나운서의 꿈을 접었다. 가족들은 집이 없어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었다. 가족의 빚은 물론 양 대표의 명의로도 거액의 빚이 있는 상황이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하루에 세 건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꾸준히 모았다. 새벽에는 세차장에서 차를 닦고 낮에는 마트에서 판촉 도우미를 했다. 저녁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상인들에게 새로 생기는 쇼핑몰에 대한 홍보 전단을 건넸다.
“단지 용돈을 버는 수준이 아니라 생활을 책임져야 했어요. 돈을 빨리 벌어서 가족들이 모여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중에서도 판촉 도우미 일이 재미있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 대비 급여가 높아서 시작한 판촉도우미 일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건을 파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님이 지나가도 머뭇거리다가 말을 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물건을 팔지 못하면 시급 높은 일을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새로운 판매 전략을 펼쳤다.
“제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던 제품을 아직도 기억해요.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크림 폰즈였죠. 처음 며칠 동안 스스로 물건을 집어가는 사람들 말고는 자력으로 물건을 팔지 못했어요. 간절한 마음에 판매하는 제품을 이용해서 얼굴 화장의 반을 현장에서 지웠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죠.”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낯선 제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양희정 대표는 볼과 이마, 입술까지 얼굴 절반의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화장을 지우며 제품을 시연하자 효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양희정 대표의 마음속에는 자신감이 차오르고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9,800원짜리 제품은 그날 100만 원 가까이 판매됐다. 이틀 후, 일을 소개한 에이전시의 실장이 매출을 높인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올 정도였다. 양희정 대표는 점점 일 잘하는 인력이라고 소문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꾸준한 성실함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같이 일을 해본 담당자들은 다음에도 모두 양희정 대표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섭외가 많이 와도 하루는 24시간이고 몸은 하나였다. 몰려오는 섭외 전화를 모두 감당할 수 없었던 양희정 대표는 일하며 알게 된 동료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일부러 저를 찾는 분들이 고마워서 일 잘하는 친구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시간만 보내고 돈 받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제 눈에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그러다가 소개 전화가 빗발쳐서 이대로는 제 업무에 차질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인력 에이전시 회사를 설립했죠.”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전신인 에이전시 스완을 설립한 해가 2001년. 처음에는 통화료나 벌자는 취지로 수수료를 저렴하게 받다 보니 파견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듬해는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인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제가 직접 일을 해도 전문 MC나 아나운서만큼 잘하니까요. 워낙 입소문이 빠르게 나면서 인력 에이전시로 기틀을 다져나갔죠. 흩어졌던 가족도 다시 모이고 제 명의로 된 가족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기획사 전환과 위기의 시절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하는 매니저를 두 명 두면서 사업체로서의 구색을 갖춰나갈 즈음, 양희정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축구장 앞에서 직접 면도기 브랜드 행사를 진행하던 양 대표의 목소리를 구단 관계자가 듣고 축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제안했다. 월드컵 열풍으로 K리그 관중이 꽉 차던 시절이었다. 과거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양희정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양 치타스(현 FC서울) 등 축구 홈구장 아나운서와 삼성 썬더스 농구장 아나운서 등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보니 방송국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현대와 CJ 등의 홈쇼핑 게스트와 쇼 호스트 등 못 해보았던 다방면의 활동에 도전했다. 하지만 여러 일을 해보고 나니 의외로 사업에 욕심이 생겼다. 양희정 대표는 대담하게도 기획사 전환을 결심했다.
양 대표는 인력 에이전시 업무를 지속하는 동시에 기획사 전향을 시도했다. 알고 지내던 기획자 한 명을 3년 동안 설득한 끝에 회사로 모셨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항상 일을 맡기던 기획사들이 일을 끊은 것이다.
“사실 제가 도전했던 분야는 기존에 인연이 있는 기획사들과는 상관없는 입찰 분야였어요. 일면식도 없는 경쟁자들과 경쟁하려는 마음이었는데 기존 기획사들은 저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스무 명 넘게 직원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일이 끊겼죠.”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럴 듯한 제안서를 가지고 입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레퍼런스가 없어서였다. 1년 동안 단 한 건의 입찰도 따내지 못했다. 양 대표가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욕심을 줄여 작은 규모의 행사에도 계속 도전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또 떨어지면 회사의 문을 닫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입찰에 도전했는데, 마침내 수주에 성공했다.
“식약처에서 발주한 4천만 원짜리 작은 행사였어요. 하늘이 내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돈을 남기지도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행사를 진행했죠. 그 행사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게 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사정이 좋아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고 힘든 시기가 다시 닥쳐왔어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살고, 기업들은 행사를 취소했다. 2015년에는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접촉을 통해 유행하는 감염병이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MICE, BTL 마케팅을 하는 업체라면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스완커뮤니케이션도 인원을 감축하고 사무실을 작은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때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나이인데, 그때 고생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하죠. 이후로는 매년 150%, 200% 성장해 왔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해온 직원들이기에 양 대표는 직원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대기업만큼의 복지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직원들이 먹는 것에 대해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 외에도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놓았다.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되면 청담동 헤어숍에서 풀메이크업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한 달에 한 번 남직원은 지정된 바버샵에서 고가의 헤어컷을, 여직원은 네일샵에서 비슷한 금액의 네일 아트를 받는다.
“남자들은 아무리 잘 꾸미고 다녀도 내 돈 5만 원 들여서 머리를 깎기는 아깝다고 하더라고요. 직원 입장에서는 회삿돈으로 멋낼 수 있어 좋고 회사 입장에서도 고객과 대면하는 직원들이 단정하니 서로에게 이득입니다.”
대표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직급이 아닌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등 평등한 소통 체계를 구축한 것도 직원들이 부담을 덜 느끼는 동시에 업무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조직 문화다. 그밖에도 3년 근속하면 2주 유급휴가, 5년 근속하면 한 달 유급휴가와 300만 원짜리 프리미엄 종합검진을 부여하는 등 직원들 상황과 스타일에 따라 차등된 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해왔다.
인력 에이전시 시절 승승장구하다가 기획사 전환과 함께 찾아온 위기는 세월호 침몰 사건 및 메르스 확산과 이어져 생각보다 장기화되었다. 지난한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성장 그래프는 업력에 비해 제법 굴곡진 편이다.
앞으로도 생각지 못한 어떤 위기가 또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백조의 발처럼 쉴틈없이 일하는 양희정 대표와 직원들이 있는 한 앞으로 어떤 위협에도 스완커뮤니케이션은 쓰러지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나갈 것을 믿는다.

 


Editor 박인혁   Cooperation 스완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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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요구에 거절은 없다,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

Focus Interview,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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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요구에 거절은 없다,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

일 년에 한 번 준비하기도 쉽지 않은 규모의 행사와 이벤트를 한 달에 서너 건씩 진행하는 기업이 있다. BTL 마케팅 및 MICE 전문 기업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상수동 스완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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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떠다니는 백조의 모습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하지만 물속에 잠긴 백조의 발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부지런히 움직인다. 기업의 행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예산과 인력,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이벤트는 언제나 완벽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주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태프가 있다. 스완커뮤니케이션은 기업 회의, 컨벤션, 사내 행사, 정부 프로젝트, 세일즈 마케팅 등 고객과 대면하는 최접점에서 에이전시 업무를 수행하는 MICE 및 BTL 서비스 전문기업이다. 스완커뮤니케이션 양희정 대표는 세월이 지날수록 BTL 마케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마케팅에서 BTL은 매체 광고나 옥외 광고 이후에 남는 예산을 활용하는 부수적인 개념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BTL 마케팅에 대한 예산이 따로 배정될 뿐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 광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는 언제나 예스맨
기업이 BTL 마케팅을 직접 진행하지 않고 대행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일은 많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박람회, 체험 이벤트, 플래그십 운영, 고객 초청 행사 등 고객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별난 에피소드, 부정적으로 말하면 머리 아픈 일들이다. 경품으로 받은 상품을 다른 제품으로 바꿔 달라고 우기거나, 행사장에서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졌다며 치료비 이상의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나 주최 측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현장에서 발생합니다. 스완은 오랜 경험으로 쌓아온 노하우로 상황을 대처할 뿐 아니라 아주 짧고 예산이 적은 행사에도 가급적 보험을 들어 리스크를 줄이고 있습니다.”
기업의 의뢰를 받아 고객들을 만나는 에이전시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둘이 된다. 두 고객이 모두 만족스러운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스완커뮤니케이션에서는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클라이언트에게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예산이 부족해 보이지만 예산을 책정하는 쪽에서는 큰돈이에요. 클라이언트가 행사에 대해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기획사나 대행사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게 되면 추가 예산을 받거나 다른 기획을 포기하지만 저희는 대부분 요구를 들어드립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노하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스완커뮤니케이션이 상황에 맞춰 실행할 수 있는 행사 레퍼토리를 다른 기획사에 비해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완커뮤니케이션이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행사를 진행하거나 같은 행사라도 예산을 적게 사용하는 노하우를 가진 이유는 꾸준히 현장에서 일하며 단계를 밟아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대부분 페이퍼 작업을 하고 이론적인 것에 특화되어 있지만 저희는 많은 현장 노하우로 실무에 능합니다. 더불어 기획사와 밴더가 아닌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온 끈끈함이 있기에 더욱 물 흐르듯 행사를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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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현대자동차 잡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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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제 형사법 컨퍼런스

 

현장에 특화된 경험의 힘
양희정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즈음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을 미루고 아나운서의 꿈을 접었다. 가족들은 집이 없어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었다. 가족의 빚은 물론 양 대표의 명의로도 거액의 빚이 있는 상황이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하루에 세 건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꾸준히 모았다. 새벽에는 세차장에서 차를 닦고 낮에는 마트에서 판촉 도우미를 했다. 저녁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상인들에게 새로 생기는 쇼핑몰에 대한 홍보 전단을 건넸다.
“단지 용돈을 버는 수준이 아니라 생활을 책임져야 했어요. 돈을 빨리 벌어서 가족들이 모여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중에서도 판촉 도우미 일이 재미있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 대비 급여가 높아서 시작한 판촉도우미 일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건을 파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님이 지나가도 머뭇거리다가 말을 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물건을 팔지 못하면 시급 높은 일을 그만두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새로운 판매 전략을 펼쳤다.
“제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던 제품을 아직도 기억해요.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크림 폰즈였죠. 처음 며칠 동안 스스로 물건을 집어가는 사람들 말고는 자력으로 물건을 팔지 못했어요. 간절한 마음에 판매하는 제품을 이용해서 얼굴 화장의 반을 현장에서 지웠습니다. 결과는 대박이었죠.”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낯선 제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양희정 대표는 볼과 이마, 입술까지 얼굴 절반의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화장을 지우며 제품을 시연하자 효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양희정 대표의 마음속에는 자신감이 차오르고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9,800원짜리 제품은 그날 100만 원 가까이 판매됐다. 이틀 후, 일을 소개한 에이전시의 실장이 매출을 높인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올 정도였다. 양희정 대표는 점점 일 잘하는 인력이라고 소문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꾸준한 성실함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같이 일을 해본 담당자들은 다음에도 모두 양희정 대표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섭외가 많이 와도 하루는 24시간이고 몸은 하나였다. 몰려오는 섭외 전화를 모두 감당할 수 없었던 양희정 대표는 일하며 알게 된 동료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일부러 저를 찾는 분들이 고마워서 일 잘하는 친구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시간만 보내고 돈 받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제 눈에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보이거든요. 그러다가 소개 전화가 빗발쳐서 이대로는 제 업무에 차질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인력 에이전시 회사를 설립했죠.”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전신인 에이전시 스완을 설립한 해가 2001년. 처음에는 통화료나 벌자는 취지로 수수료를 저렴하게 받다 보니 파견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듬해는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다.
“인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제가 직접 일을 해도 전문 MC나 아나운서만큼 잘하니까요. 워낙 입소문이 빠르게 나면서 인력 에이전시로 기틀을 다져나갔죠. 흩어졌던 가족도 다시 모이고 제 명의로 된 가족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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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 전환과 위기의 시절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하는 매니저를 두 명 두면서 사업체로서의 구색을 갖춰나갈 즈음, 양희정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축구장 앞에서 직접 면도기 브랜드 행사를 진행하던 양 대표의 목소리를 구단 관계자가 듣고 축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제안했다. 월드컵 열풍으로 K리그 관중이 꽉 차던 시절이었다. 과거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양희정 대표는 새로운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양 치타스(현 FC서울) 등 축구 홈구장 아나운서와 삼성 썬더스 농구장 아나운서 등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보니 방송국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현대와 CJ 등의 홈쇼핑 게스트와 쇼 호스트 등 못 해보았던 다방면의 활동에 도전했다. 하지만 여러 일을 해보고 나니 의외로 사업에 욕심이 생겼다. 양희정 대표는 대담하게도 기획사 전환을 결심했다.
양 대표는 인력 에이전시 업무를 지속하는 동시에 기획사 전향을 시도했다. 알고 지내던 기획자 한 명을 3년 동안 설득한 끝에 회사로 모셨다. 하지만 곧 위기가 찾아왔다. 항상 일을 맡기던 기획사들이 일을 끊은 것이다.
“사실 제가 도전했던 분야는 기존에 인연이 있는 기획사들과는 상관없는 입찰 분야였어요. 일면식도 없는 경쟁자들과 경쟁하려는 마음이었는데 기존 기획사들은 저를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스무 명 넘게 직원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일이 끊겼죠.”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럴 듯한 제안서를 가지고 입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레퍼런스가 없어서였다. 1년 동안 단 한 건의 입찰도 따내지 못했다. 양 대표가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욕심을 줄여 작은 규모의 행사에도 계속 도전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또 떨어지면 회사의 문을 닫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입찰에 도전했는데, 마침내 수주에 성공했다.
“식약처에서 발주한 4천만 원짜리 작은 행사였어요. 하늘이 내린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돈을 남기지도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행사를 진행했죠. 그 행사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게 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사정이 좋아지기 시작했죠.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고 힘든 시기가 다시 닥쳐왔어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살고, 기업들은 행사를 취소했다. 2015년에는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접촉을 통해 유행하는 감염병이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MICE, BTL 마케팅을 하는 업체라면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스완커뮤니케이션도 인원을 감축하고 사무실을 작은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때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젊은 나이인데, 그때 고생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하죠. 이후로는 매년 150%, 200% 성장해 왔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해온 직원들이기에 양 대표는 직원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대기업만큼의 복지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직원들이 먹는 것에 대해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 외에도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놓았다. 수습 기간을 거쳐 정직원이 되면 청담동 헤어숍에서 풀메이크업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한 달에 한 번 남직원은 지정된 바버샵에서 고가의 헤어컷을, 여직원은 네일샵에서 비슷한 금액의 네일 아트를 받는다.
“남자들은 아무리 잘 꾸미고 다녀도 내 돈 5만 원 들여서 머리를 깎기는 아깝다고 하더라고요. 직원 입장에서는 회삿돈으로 멋낼 수 있어 좋고 회사 입장에서도 고객과 대면하는 직원들이 단정하니 서로에게 이득입니다.”
대표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직급이 아닌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등 평등한 소통 체계를 구축한 것도 직원들이 부담을 덜 느끼는 동시에 업무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조직 문화다. 그밖에도 3년 근속하면 2주 유급휴가, 5년 근속하면 한 달 유급휴가와 300만 원짜리 프리미엄 종합검진을 부여하는 등 직원들 상황과 스타일에 따라 차등된 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해왔다.
인력 에이전시 시절 승승장구하다가 기획사 전환과 함께 찾아온 위기는 세월호 침몰 사건 및 메르스 확산과 이어져 생각보다 장기화되었다. 지난한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스완커뮤니케이션의 성장 그래프는 업력에 비해 제법 굴곡진 편이다.
앞으로도 생각지 못한 어떤 위기가 또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백조의 발처럼 쉴틈없이 일하는 양희정 대표와 직원들이 있는 한 앞으로 어떤 위협에도 스완커뮤니케이션은 쓰러지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나갈 것을 믿는다.

 


Editor 박인혁   Cooperation 스완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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