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업계의 강자 골드라인은 국내 수출산업에서파렛트 중요성을 획득하고 필수적인 매개체로 떠오른 지금까지의 부침(浮沈) 과정을 함께 겪은 기업이다. ‘파렛트 외길 걸어온 골드라인의 구성원들은 창업 당시의 초심을 유지하는 데에지극정성이다. CEO 이홍기 회장부터가한국산 영어눈치 밑천삼아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아야 했던 대기업의상사 ’, 넓은 미국 시장을 무대로 패션 슈즈 유통기업의 젊은 CEO 거쳐 파렛트 전문 중견기업의 회장으로 올라서기까지, 한시도 형식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별의 상흔이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내리는 쓸쓸한 공원에 가기 겁난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 슬픈 음악을 듣기도 무섭다. 유년기를 양친의 그늘 없이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야 했던 이들이나,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가슴이 저민다 무슨 뜻인지 본능적으로 이해할 있다. 마찬가지로 일생에서 한번이라도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껴본 사람이라면, 표현에 대해 함부로 식상하다는 평가를 달기 어렵다. 일종의트라우마적 터부. 이홍기 골드라인 패밀리 회장은 고객에게서감동의 눈물 흘러나와야 비로소 안심할 있는 기업가다. 창업과 기업 발전의 과정에서감동의 눈물 방울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익히고 배운 기억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패밀리라고 부르는 분명한 이유


골드라인도 해외 법인을 비롯해 계열사들이 하나 생겨나자 주위에서 그룹이라고 좋은 말로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하지만 저는 그룹이라는 말보다 패밀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규모의 집단을 내세우는 위세의 표현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지적 표현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이홍기 회장의 철학을 단적으로 이해할 있는 설명이다. 그가 이끄는 골드라인의 기업문화가 말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회장의패밀리 정신 주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오랜 시간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동갑내기 지인으로 누구보다 회장의 공과 사를 아는 서병륜 로지스올(Logis All) 회장도 그의 철학에 기꺼이 동의하는 CEO이홍기 회장님은 마디로 확실한 분입니다. 사업 파트너로 만났지만 이제는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것도 그분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심 덕분이지요. 앞으로도 평생 동안 우리의 지우관계는 계속될 것이고, 대를 이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분입니다. 인간관계는 이해심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품어내는 바다를 연상케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바늘처럼 예리한 면도 있어 강온의 양면을 갖췄다고 있지요. 흔들림 없이 명확한 판단력으로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분이고, 남다른 의욕을 갖춰 한번 추진하면 멈추지 않는 실행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지혜가 많은 CEO라고 불러도 같습니다.“

 

이홍기 회장이 지금처럼 성공한 CEO 면모를 갖추기까지의 노정에는, 결코 쉽지 않았던 기억의 면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난 89 전남 여수의 천막공장에서 시작한 벌써 25년이 흘렀군요. 파렛트의 전망 하나만 보고 뛰어들었지만 저는 전망이 확실하다는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다행히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지금은 파렛트가 없는 수출이란 상상할 조차 없는 환경이 됐죠.” 골드라인은 물류업계에서 빼놓을 없는 운반대, 파렛트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물류 수송에서 파렛트는 국제적인 표준 물량 단위로 통한다. 하역과 선적시 파렛트 위에 놓인 화물들을 지게차로 옮기는 과정의 간편함 때문이다. 회장이 수출산업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 파렛트를 생산하는 기업의 CEO 이유는, 젊은 시절 그가 해외를 누비고 다녔던상사 이력과 맥이 닿아있다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홍기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크면 당연히 사업을 해야 되는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집안이 모두 사업가 집안이고, 일가 친척들이 모두 사업을 하고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 꿈도 CEO였지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게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CEO 대한 확실한 개념도 잡히지 않은 나이였는데도 말이죠. 하하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온예비 CEO 이홍기 1973 종합무역상사에 입사했다. 금호실업이 그가 글로벌 비즈니스의 경험을 쌓게 보금자리였고, ‘상사 이홍기 뒷날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까지 지낸 박찬법 씨를 직속 상사로 모시고 유럽과 미주 선진국 시장의 문을 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가 입사할 당시 70년대 무역상사원들은수출보국이라는 국가의 독려 아래 투철한 사명감이라는 무기 하나로 세계 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있는 것들은 모두 팔러 다녔죠. 한번은 제가 유럽의 바이어들 앞에서 조그만 가전제품 샘플을 꺼냈는데, 작동이 안되는 겁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바이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정말 난감했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원천기술이 없었고 국산품들의 품질도 그만큼 조악했지만, 그래도 상사 맨들은수출만이 이라는 국가 정책 슬로건을 가슴에 품고 외국인들 앞에서 뻔뻔함을 감수할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핸드폰과 자동차가 세계에서 호평을 받는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이 아니어서 상사원으로 발령이 나더라도 해외경험이 없기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외국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유럽에 가서 와인을 즐겨 마시는 문화를 처음 접했지요. 예절은 커녕 와인 맛도 제대로 몰랐고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눈치껏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지요. 한번은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집주인이 권하는 대로 와인을 골랐는데, 눈치 없이 가장 고가의 와인을 따버린 거예요. 아마 주인이 애지중지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와인인 같은데, 와인 코르크를 꺼내는 순간 하얗게 질리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상사원 이홍기는 유럽 시장에서 한국 상품을 개라도 팔기 위해 발품을 팔며 수출역군의 잔뼈를 키웠다

 

 

 

 

패션 슈즈 유통으로 시작된골드 라인


경험이 없었던 만큼 고생은 했지만 보람은 있었고 회사에서도 빠른 승진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금호에서 젊은 나이에 이태리 밀라노 지사장을 역임한 이홍기 회장은 미국 뉴욕에 정착하며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밀라노 지사장 시절 업무상 패션 매장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는데, 패션 슈즈 유통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신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죠. 뉴욕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고 무역상사를 나온 사업의 아이템으로 패션 슈즈를 선택했습니다.” 상사원 시절 몸으로 터득한 지혜는 어느 분야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경험 습득은 필수라는 것이다. 결국 뉴욕의 신발가게 점원으로 취직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 회장은 1년여 패션 슈즈 유통의 사이클을 배우고 익혔다. “1년간의 경험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경험이 사업에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말이죠. 제가 내놓은 패션 슈즈 아이템은 뉴욕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트를 쳤고 속칭대박 냈습니다. 그때 제가 창업한 회사의 이름이 골드 라인이었습니다.” 

 

1984 미국에서 창업한 유통 회사의 상호명이 현재 골드라인 패밀리의 뿌리가 ‘Gold Line Inc.’였고, 한국에서 골드라인 창업의 깃발을 다시 1989년의 5 무렵이었다. 젊은 사업가 이홍기 대표는 미국에서의 사업이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앞을 내다볼 없는 소비자와 시장의 변덕 때문이었다.  “미국 젊은이들에게 패션 슈즈를 유통한다는 것은 디자인 감각의 첨단을 달리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익혔지만, 우리 회사는 자체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브랜드가 아니었고 중간 유통업체였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 몰라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도 변수였다. 철을 나는 패션슈즈 유통에서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매출은 급감하기 마련이고 이홍기 대표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크리스찬의프리미엄 매달린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의 발로였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교회에 나가 기도했지요. 제발 주일 장사가 잘되라고그런데  이기적인 기도 내용 때문인지 그때부터 장사가 안되더군요. 사업은 어려워졌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굳혔습니다.” 외국 생활에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경험과 자신감 뿐이었다.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시장을 돌아보았고 상사원 출신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출 화물의 하역 작업시 필요한 파렛트였다. “파렛트를 보고 본능적으로 저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80년대는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점이었고 경공업 제품에서 중공업, 기간 산업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죠. 엄청난 화물량을 빠른 시간에 컨테이너에 싣고 내리려면 파렛트는 필수적이었고 그만큼 수요 증가에 대한 전망도 희망적이었습니다.”

 

 

 

 

이홍기 회장이 창업한 파렛트 생산기업골드라인 출발이었다


창업에 대한 성공의 열망 때문이었을까. 회장은 미국에서 사용하던 유통회사의 상호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싶었다. 그런데 사업자 등록을 위해 찾아간 주무부처에서 회장은 다소황당한 다툼 겪어야 했다. “담당자가 한문 상호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한글 상호와 한문상호가 나란히 병기되던 양식이 사용되고 있었고 란을 채워야 했던 담당자의 주문이었죠. 저는 한문 상호를 사용해야 하는 납득할 없었고 담당자에게 법적 근거를 대라고 항변했지요.”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야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런 저런 각종 규제로 묶여 있던 관료적 행정 환경에서 회장처럼 담당자에게 대드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문과 한글 상호만으로 등록은 됐지만, 회장이 이끄는 골드라인의 사옥은 전남 여수의 천막공장에 불과했다

 

 

 

 

낙관과 허풍은 종이 차이


당시 창업 멤버들에게 저는 우리나라 최고의 파렛트 생산기업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열의와 사기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되뇌이는 일종의 주문이었죠. 나중에 자리에 있던 직원들에게 들으니 젊은 호기에서 나오는 허풍인줄 알았더군요. 제가 낙천적인 성격이라 긍정적 다짐을 하는 편인데, 그것이 남들에게는 허풍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야 속처럼 짐작하기 어렵다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진짜 허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업가적 직관으로 충분히 있다. 회장은 천막공장에서 출발한 골드라인의 규모를 창업 25 만에 1천억 원이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골드라인의 지난 매출은 국내 집계분만 11백억 원에 달하고 해외 법인을 합치면 15백억 원이 넘는다.  

 

지금의 성장속도를 고려할 3 내에 3천억 원을 돌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골드라인은 파렛트를 만드는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세계적인 물류 용기 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 중입니다.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파렛트 표면의 미끄럼 방지 기술은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원천입니다. 지금은 국내 매출 비중이 높지만 2~3 내에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따라잡고 개의 성장 동력이 완성되면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엔진 개로 달리는 자동차의 가속을 연상하자 골드라인의 힘찬 질주는 쉽게 짐작이 간다. “지금까지 골드라인의 성공 이유에 대해 많은 분들이 질문했지만 그럴 마다 저는 낙천적 성격과 책임감이라고 대답합니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지요.”

 


 
회장의 말처럼 가지 항목은 악물며 웃기’, ‘웃으면서 눈에 힘주기처럼 병행하기가 보통 어려운 아니다. 요즘의 경영학적 표현으로 바꿔보면 낙천적 성격은긍정적 사고의 지향으로, ‘책임감위기관리 능력’, 리스크에 대한 대비정도로 해석될 하다. 바꿔놓고 보니, 가지만 잘하면 단연 능력있는 CEO 손꼽힐만 하다. 조직에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CEO야말로 구성원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자동 펌프 불리기에 손색없고, 리스크 대비를 잘하는 CEO 경영 안정을 지속적으로 가져갈 있다는 점에서미래지향적 CEO’ 칭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홍기 회장의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욕심은 여기에 예지력을 더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CEO 예언자가 아닌 다음에야 예지력을 타고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장 조사 노력과 시장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부지런한노력 배양된능력 조화를 이룬다면 예지력이 생기지 않을 없다. ‘구구이 타당이요, 절절이 납득이다.   

 

 

 

 

미래를 대비하되 전방위로


이홍기 회장의 예지력이 극명하게 발휘된 부분은 골드라인의 유연한 생산라인이다. 목재, 플라스틱, 철제 다양한 재질의 파렛트가 생산할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있는 점이 회사의 자랑이다. “우리 회사처럼 다양한 생산라인을 갖춘 경우는 동종업계에서 매우 드문 사례라고 있습니다. 목재에서 플라스틱으로 업계의 무게중심이 이동될 이에 대비한 회사는 살아남았고 때를 놓친 업체는 도태되었지요. 하지만 발이 빠르다고 해서 완전히 시스템을 뒤바꿔버린 경우는 오히려 지나친 변화로 부작용을 겪기도 합니다.” 아직머물러 있는 고객들 놓치는 경우가 그러한 부작용이다. 부작용의 장애물을 억지로 돌파하려면 무리한 네거티브 전략을 동원하는 밖에 없다. 플라스틱 파렛트를 생산하는 업체는 목재와 철제의 단점을 부각시켜야 하고, 목재나 철제 생산업체는 플라스틱 파렛트의 비효율성을 고객에게 어필하며변명하는 업체’, 혹은네거티브 업체 전락하는 것이다. 생산라인이 다양한 골드라인은 고객의 주문에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 이같은 오명으로부터 자유롭다. ‘값어치, 가치 있는 아이템 의미를 지닌골드라인(Gold Line)’ 작명 취지에 가장 가깝게 기업 활동을 전개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뚝심과 유연함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만,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수용할 있는 트너로서의 신뢰도 함께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홍기 회장은 내부 고객인 직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이같은 유연성을 적절히 활용한다. 앞에서 혹은 위에서 길을 살펴가며 직원들을 이끌지만, 너무 높거나 먼 곳에서 지휘하는 모습으로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다. “창업 당시부터 생산라인이 아닌 사무직원들에게는 출퇴근 시간에 있어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형식적인 외양에 얽매여 정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능률이 오르더군요. 자신들의 역량과 근무 시간을 측정하고 예상하며 적극적인 업무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호출기 번호로 암호를 정해서 이 회장과 소통한 것도 이 회사 직원들의 아이디어였다. “결재바람”이나 “빨리 오세요”같은 암호로 직원들이 이 회장에게 신속하게 연락하며 스피드 경영을 추구할 수 있었다는 것. 이 회장의 유연한 경영 스타일은 이직률을 낮추고 애사심을 갖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이직률은 업계를 통틀어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할 겁니다. 창업 당시의 멤버가 그대로 정년이 될 때까지 근무하는 회사로 자리 잡은 이유는 직원들에게 수동적으로 지시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덕분이지요.” 한번 제대로 탄력을 받은 스프링은 웅크려 있을 때보다 탄성이 좋아지는 법이다.  이홍기 회장은 능동적인 인재상을 회사 안에서만 구현할 것이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적극적인 사회공헌으로 ‘패밀리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재단법인 국제연맹 합기도 회장과 ‘W 필하모닉오케스트라’ 2대 이사장으로서 체육과 문화 후원을 통한 나눔 활동으로 이 회장의 하루는 더 짧아진 것이다.  “음악을 통한 소외계층 후원은 돈으로 하는 기부보다 더 값지고 보람차지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고 정서적인 문화 욕구마저 메말라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전당, 성남 아트홀, 각 지자체 구민회관 등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소외계층을 무료로 초청하는 행사로 문화적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외계층에게 공연 관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무한경쟁의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맹활약하던 무역상사 주재원,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조 미국 시장에서 급변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던 유통기업 CEO, 물류업계 강소기업을 일구는 기업가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객들에게 ‘감동의 눈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이홍기 회장은, 이제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문화사업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의 눈물’을 선물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언젠가 그에게 되돌아올 ‘감동의 눈물’은 그의 성품을 닮은 바다처럼, 넓지만 잔잔하고 ‘진심의 짠맛’이 우러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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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이홍기 골드라인 패밀리 회장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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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과 신뢰로 구축한 골든 패밀리

물류업계의 강자 골드라인은 국내 수출산업에서파렛트 중요성을 획득하고 필수적인 매개체로 떠오른 지금까지의 부침(浮沈) 과정을 함께 겪은 기업이다. ‘파렛트 외길 걸어온 골드라인의 구성원들은 창업 당시의 초심을 유지하는 데에지극정성이다. CEO 이홍기 회장부터가한국산 영어눈치 밑천삼아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아야 했던 대기업의상사 ’, 넓은 미국 시장을 무대로 패션 슈즈 유통기업의 젊은 CEO 거쳐 파렛트 전문 중견기업의 회장으로 올라서기까지, 한시도 형식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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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상흔이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은, 내리는 쓸쓸한 공원에 가기 겁난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자 슬픈 음악을 듣기도 무섭다. 유년기를 양친의 그늘 없이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야 했던 이들이나,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가슴이 저민다 무슨 뜻인지 본능적으로 이해할 있다. 마찬가지로 일생에서 한번이라도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껴본 사람이라면, 표현에 대해 함부로 식상하다는 평가를 달기 어렵다. 일종의트라우마적 터부. 이홍기 골드라인 패밀리 회장은 고객에게서감동의 눈물 흘러나와야 비로소 안심할 있는 기업가다. 창업과 기업 발전의 과정에서감동의 눈물 방울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는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익히고 배운 기억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패밀리라고 부르는 분명한 이유


골드라인도 해외 법인을 비롯해 계열사들이 하나 생겨나자 주위에서 그룹이라고 좋은 말로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하지만 저는 그룹이라는 말보다 패밀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규모의 집단을 내세우는 위세의 표현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지적 표현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이홍기 회장의 철학을 단적으로 이해할 있는 설명이다. 그가 이끄는 골드라인의 기업문화가 말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회장의패밀리 정신 주위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오랜 시간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동갑내기 지인으로 누구보다 회장의 공과 사를 아는 서병륜 로지스올(Logis All) 회장도 그의 철학에 기꺼이 동의하는 CEO이홍기 회장님은 마디로 확실한 분입니다. 사업 파트너로 만났지만 이제는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것도 그분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심 덕분이지요. 앞으로도 평생 동안 우리의 지우관계는 계속될 것이고, 대를 이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분입니다. 인간관계는 이해심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품어내는 바다를 연상케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바늘처럼 예리한 면도 있어 강온의 양면을 갖췄다고 있지요. 흔들림 없이 명확한 판단력으로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분이고, 남다른 의욕을 갖춰 한번 추진하면 멈추지 않는 실행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지혜가 많은 CEO라고 불러도 같습니다.“

 

이홍기 회장이 지금처럼 성공한 CEO 면모를 갖추기까지의 노정에는, 결코 쉽지 않았던 기억의 면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난 89 전남 여수의 천막공장에서 시작한 벌써 25년이 흘렀군요. 파렛트의 전망 하나만 보고 뛰어들었지만 저는 전망이 확실하다는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다행히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지금은 파렛트가 없는 수출이란 상상할 조차 없는 환경이 됐죠.” 골드라인은 물류업계에서 빼놓을 없는 운반대, 파렛트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물류 수송에서 파렛트는 국제적인 표준 물량 단위로 통한다. 하역과 선적시 파렛트 위에 놓인 화물들을 지게차로 옮기는 과정의 간편함 때문이다. 회장이 수출산업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 파렛트를 생산하는 기업의 CEO 이유는, 젊은 시절 그가 해외를 누비고 다녔던상사 이력과 맥이 닿아있다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홍기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크면 당연히 사업을 해야 되는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집안이 모두 사업가 집안이고, 일가 친척들이 모두 사업을 하고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어린 시절 꿈도 CEO였지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게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CEO 대한 확실한 개념도 잡히지 않은 나이였는데도 말이죠. 하하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온예비 CEO 이홍기 1973 종합무역상사에 입사했다. 금호실업이 그가 글로벌 비즈니스의 경험을 쌓게 보금자리였고, ‘상사 이홍기 뒷날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까지 지낸 박찬법 씨를 직속 상사로 모시고 유럽과 미주 선진국 시장의 문을 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가 입사할 당시 70년대 무역상사원들은수출보국이라는 국가의 독려 아래 투철한 사명감이라는 무기 하나로 세계 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있는 것들은 모두 팔러 다녔죠. 한번은 제가 유럽의 바이어들 앞에서 조그만 가전제품 샘플을 꺼냈는데, 작동이 안되는 겁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바이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 정말 난감했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원천기술이 없었고 국산품들의 품질도 그만큼 조악했지만, 그래도 상사 맨들은수출만이 이라는 국가 정책 슬로건을 가슴에 품고 외국인들 앞에서 뻔뻔함을 감수할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핸드폰과 자동차가 세계에서 호평을 받는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이 아니어서 상사원으로 발령이 나더라도 해외경험이 없기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외국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유럽에 가서 와인을 즐겨 마시는 문화를 처음 접했지요. 예절은 커녕 와인 맛도 제대로 몰랐고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눈치껏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지요. 한번은 현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집주인이 권하는 대로 와인을 골랐는데, 눈치 없이 가장 고가의 와인을 따버린 거예요. 아마 주인이 애지중지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와인인 같은데, 와인 코르크를 꺼내는 순간 하얗게 질리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상사원 이홍기는 유럽 시장에서 한국 상품을 개라도 팔기 위해 발품을 팔며 수출역군의 잔뼈를 키웠다

 

 

 

 

패션 슈즈 유통으로 시작된골드 라인


경험이 없었던 만큼 고생은 했지만 보람은 있었고 회사에서도 빠른 승진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금호에서 젊은 나이에 이태리 밀라노 지사장을 역임한 이홍기 회장은 미국 뉴욕에 정착하며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밀라노 지사장 시절 업무상 패션 매장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는데, 패션 슈즈 유통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신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죠. 뉴욕 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고 무역상사를 나온 사업의 아이템으로 패션 슈즈를 선택했습니다.” 상사원 시절 몸으로 터득한 지혜는 어느 분야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경험 습득은 필수라는 것이다. 결국 뉴욕의 신발가게 점원으로 취직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 회장은 1년여 패션 슈즈 유통의 사이클을 배우고 익혔다. “1년간의 경험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경험이 사업에서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말이죠. 제가 내놓은 패션 슈즈 아이템은 뉴욕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트를 쳤고 속칭대박 냈습니다. 그때 제가 창업한 회사의 이름이 골드 라인이었습니다.” 

 

1984 미국에서 창업한 유통 회사의 상호명이 현재 골드라인 패밀리의 뿌리가 ‘Gold Line Inc.’였고, 한국에서 골드라인 창업의 깃발을 다시 1989년의 5 무렵이었다. 젊은 사업가 이홍기 대표는 미국에서의 사업이 크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앞을 내다볼 없는 소비자와 시장의 변덕 때문이었다.  “미국 젊은이들에게 패션 슈즈를 유통한다는 것은 디자인 감각의 첨단을 달리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부지런히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익혔지만, 우리 회사는 자체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브랜드가 아니었고 중간 유통업체였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 몰라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도 변수였다. 철을 나는 패션슈즈 유통에서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매출은 급감하기 마련이고 이홍기 대표의 마음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크리스찬의프리미엄 매달린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의 발로였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교회에 나가 기도했지요. 제발 주일 장사가 잘되라고그런데  이기적인 기도 내용 때문인지 그때부터 장사가 안되더군요. 사업은 어려워졌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굳혔습니다.” 외국 생활에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경험과 자신감 뿐이었다.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시장을 돌아보았고 상사원 출신인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출 화물의 하역 작업시 필요한 파렛트였다. “파렛트를 보고 본능적으로 저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80년대는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점이었고 경공업 제품에서 중공업, 기간 산업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죠. 엄청난 화물량을 빠른 시간에 컨테이너에 싣고 내리려면 파렛트는 필수적이었고 그만큼 수요 증가에 대한 전망도 희망적이었습니다.”

 

 

 

 

이홍기 회장이 창업한 파렛트 생산기업골드라인 출발이었다


창업에 대한 성공의 열망 때문이었을까. 회장은 미국에서 사용하던 유통회사의 상호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싶었다. 그런데 사업자 등록을 위해 찾아간 주무부처에서 회장은 다소황당한 다툼 겪어야 했다. “담당자가 한문 상호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한글 상호와 한문상호가 나란히 병기되던 양식이 사용되고 있었고 란을 채워야 했던 담당자의 주문이었죠. 저는 한문 상호를 사용해야 하는 납득할 없었고 담당자에게 법적 근거를 대라고 항변했지요.”  지금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야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런 저런 각종 규제로 묶여 있던 관료적 행정 환경에서 회장처럼 담당자에게 대드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문과 한글 상호만으로 등록은 됐지만, 회장이 이끄는 골드라인의 사옥은 전남 여수의 천막공장에 불과했다

 

 

 

 

낙관과 허풍은 종이 차이


당시 창업 멤버들에게 저는 우리나라 최고의 파렛트 생산기업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열의와 사기를 높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되뇌이는 일종의 주문이었죠. 나중에 자리에 있던 직원들에게 들으니 젊은 호기에서 나오는 허풍인줄 알았더군요. 제가 낙천적인 성격이라 긍정적 다짐을 하는 편인데, 그것이 남들에게는 허풍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야 속처럼 짐작하기 어렵다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진짜 허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업가적 직관으로 충분히 있다. 회장은 천막공장에서 출발한 골드라인의 규모를 창업 25 만에 1천억 원이 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골드라인의 지난 매출은 국내 집계분만 11백억 원에 달하고 해외 법인을 합치면 15백억 원이 넘는다.  

 

지금의 성장속도를 고려할 3 내에 3천억 원을 돌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골드라인은 파렛트를 만드는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세계적인 물류 용기 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 중입니다.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파렛트 표면의 미끄럼 방지 기술은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원천입니다. 지금은 국내 매출 비중이 높지만 2~3 내에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따라잡고 개의 성장 동력이 완성되면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엔진 개로 달리는 자동차의 가속을 연상하자 골드라인의 힘찬 질주는 쉽게 짐작이 간다. “지금까지 골드라인의 성공 이유에 대해 많은 분들이 질문했지만 그럴 마다 저는 낙천적 성격과 책임감이라고 대답합니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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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의 말처럼 가지 항목은 악물며 웃기’, ‘웃으면서 눈에 힘주기처럼 병행하기가 보통 어려운 아니다. 요즘의 경영학적 표현으로 바꿔보면 낙천적 성격은긍정적 사고의 지향으로, ‘책임감위기관리 능력’, 리스크에 대한 대비정도로 해석될 하다. 바꿔놓고 보니, 가지만 잘하면 단연 능력있는 CEO 손꼽힐만 하다. 조직에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CEO야말로 구성원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자동 펌프 불리기에 손색없고, 리스크 대비를 잘하는 CEO 경영 안정을 지속적으로 가져갈 있다는 점에서미래지향적 CEO’ 칭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홍기 회장의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욕심은 여기에 예지력을 더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CEO 예언자가 아닌 다음에야 예지력을 타고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장 조사 노력과 시장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요.” 부지런한노력 배양된능력 조화를 이룬다면 예지력이 생기지 않을 없다. ‘구구이 타당이요, 절절이 납득이다.   

 

 

 

 

미래를 대비하되 전방위로


이홍기 회장의 예지력이 극명하게 발휘된 부분은 골드라인의 유연한 생산라인이다. 목재, 플라스틱, 철제 다양한 재질의 파렛트가 생산할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다양한 니즈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있는 점이 회사의 자랑이다. “우리 회사처럼 다양한 생산라인을 갖춘 경우는 동종업계에서 매우 드문 사례라고 있습니다. 목재에서 플라스틱으로 업계의 무게중심이 이동될 이에 대비한 회사는 살아남았고 때를 놓친 업체는 도태되었지요. 하지만 발이 빠르다고 해서 완전히 시스템을 뒤바꿔버린 경우는 오히려 지나친 변화로 부작용을 겪기도 합니다.” 아직머물러 있는 고객들 놓치는 경우가 그러한 부작용이다. 부작용의 장애물을 억지로 돌파하려면 무리한 네거티브 전략을 동원하는 밖에 없다. 플라스틱 파렛트를 생산하는 업체는 목재와 철제의 단점을 부각시켜야 하고, 목재나 철제 생산업체는 플라스틱 파렛트의 비효율성을 고객에게 어필하며변명하는 업체’, 혹은네거티브 업체 전락하는 것이다. 생산라인이 다양한 골드라인은 고객의 주문에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 이같은 오명으로부터 자유롭다. ‘값어치, 가치 있는 아이템 의미를 지닌골드라인(Gold Line)’ 작명 취지에 가장 가깝게 기업 활동을 전개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뚝심과 유연함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만,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수용할 있는 트너로서의 신뢰도 함께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홍기 회장은 내부 고객인 직원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이같은 유연성을 적절히 활용한다. 앞에서 혹은 위에서 길을 살펴가며 직원들을 이끌지만, 너무 높거나 먼 곳에서 지휘하는 모습으로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다. “창업 당시부터 생산라인이 아닌 사무직원들에게는 출퇴근 시간에 있어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형식적인 외양에 얽매여 정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능률이 오르더군요. 자신들의 역량과 근무 시간을 측정하고 예상하며 적극적인 업무능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호출기 번호로 암호를 정해서 이 회장과 소통한 것도 이 회사 직원들의 아이디어였다. “결재바람”이나 “빨리 오세요”같은 암호로 직원들이 이 회장에게 신속하게 연락하며 스피드 경영을 추구할 수 있었다는 것. 이 회장의 유연한 경영 스타일은 이직률을 낮추고 애사심을 갖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이직률은 업계를 통틀어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할 겁니다. 창업 당시의 멤버가 그대로 정년이 될 때까지 근무하는 회사로 자리 잡은 이유는 직원들에게 수동적으로 지시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덕분이지요.” 한번 제대로 탄력을 받은 스프링은 웅크려 있을 때보다 탄성이 좋아지는 법이다.  이홍기 회장은 능동적인 인재상을 회사 안에서만 구현할 것이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고, 적극적인 사회공헌으로 ‘패밀리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재단법인 국제연맹 합기도 회장과 ‘W 필하모닉오케스트라’ 2대 이사장으로서 체육과 문화 후원을 통한 나눔 활동으로 이 회장의 하루는 더 짧아진 것이다.  “음악을 통한 소외계층 후원은 돈으로 하는 기부보다 더 값지고 보람차지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고 정서적인 문화 욕구마저 메말라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전당, 성남 아트홀, 각 지자체 구민회관 등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공연에 소외계층을 무료로 초청하는 행사로 문화적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외계층에게 공연 관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무한경쟁의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맹활약하던 무역상사 주재원,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조 미국 시장에서 급변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던 유통기업 CEO, 물류업계 강소기업을 일구는 기업가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객들에게 ‘감동의 눈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이홍기 회장은, 이제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문화사업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의 눈물’을 선물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언젠가 그에게 되돌아올 ‘감동의 눈물’은 그의 성품을 닮은 바다처럼, 넓지만 잔잔하고 ‘진심의 짠맛’이 우러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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