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그룹 창업주 최등규 회장,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말한다면세상을 아는 기업인이라 하고, 대보를 아는 사람은악바리라고 한다. 1981 6 대보실업으로 출발하여 대보건설, 대보유통, 대보정보통신, 서원밸리컨트리클럽 등으로 이어진 성공신화를 내려가고 있는 최등규 회장을 지난 10 7 대보그룹 회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한혜진   Photographer 김수홍

 

 


 

 

 

학력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AMP 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AMP 과정 수료, 서울과학종합대학원 aSSIST 4T CEO과정 수료, KMAC 와튼스쿨 CEO 과정 수료, 경력 1981 대보실업 대표, 1993 대보종합건설 대표, 1995 대보유통 대표, 2000 서원밸리 컨트리클럽 회장, 2002 DB정보통신 회장, 현재 대보그룹 회장  포상 2009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36인에 선정(환경재단), 2012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골프대중화 공로)

 

최근 흔하게 쓰는 용어 개천용이라는 말이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줄임말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공을 거둔, 자수성가한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다. 격동의 1970년대를 지나 IMF 겪기 전까지 고속성장을 하며 질주해온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수많은 성공신화와 개천용을 양산해냈다.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도 개천용 사람이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작은 용이 한국경제의 축을 지탱하는 거대한 용이 것이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


최등규 회장은 1948년생으로 6·25전쟁과 1970년대의 격동기를 몸으로 직접 겪은 세대다. 척박한 환경과 불안정한 사회환경 속에서 그를 일으킨 불도저 같은도전 정신이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옛말을 가슴에 새기며,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우리나라의 중심이자 가장 도시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젊은 패기하나만 믿고 올라온 서울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부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오후에는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문지기로 일했지요.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은 매우 힘들었지만, 성공하기 전까지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매일 다짐했습니다. 먹고 싶은 , 하고 싶은 참아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요. 그렇게 치열하게 일한 결과 상경한 만에 광화문 인근의 독서실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보실업을 창립하기 전까지, 대보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무역과 유통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유명 이유식인 거버 제품의 아시아 총판권을 따내고, 당시에는 쉽게 접할 없었던 스킨스쿠버와 스키 고급 레저용품을 수입, 유통하면서 많은 이익을 냈다. 특히 스킨스쿠버와 스키 용품을 군부대에 납품하며 인맥을 넓혔다. 또한 부동산 운영에 특히 이재가 밝았던 그는 잠실의 아파트와 상가 운영으로 많은 이익을 보았다. 당시 어느 중앙 일간지에최등규가 아파트를 사면 아파트 값이 뛴다 분석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30 초반에 서울 중심에 아파트 80채를 소유한 부동산재벌이 되었다. 독서실과 무역업, 부동산 사업 손대는 것마다 수익을 창출하며 자신감이 생긴 회장은 광산업에 진출하게 된다. 전라북도의 채석장에서 화강석을 채취하여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사업이었다. 일반 건축물에 쓰이는 원자재가 아닌 고급 건축물에 사용되는 고급 자재로 포커스를 맞춘 채석사업은 원료의 결함으로 인해 채산성이 떨어지고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채석사업이 실패하면서 그의 성공신화는 끝이 보이는 듯했다.

 

 

 

고난은 나를 일으키는 힘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는 앞으로만 달리는 경주마 같았습니다. 또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니 한마디로 겁이 없었지요. 그러던 지인을 통해 광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고, 앞뒤 재지 않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업 실패 가지고 있던 아파트는 빚을 갚기 위해 모두 처분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시골 처가에 내려보냈습니다. 십여 동안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순식간에제로 되었습니다. 보령에서 처음 올라왔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지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악바리처럼 일만 했지요.” 당시 장인어른에게 들었던 한마디는 평생 그를 곧세우는 좌우명이 되었다. “마아철저(磨我鐵杵)라는 말은 내가 가장 힘든 고난에 빠졌을 나를 일으켜준 말입니다.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어려움을 겪을 장인어른께서 써주신 말인데, ‘쇠절구공이를 갈아서 만들듯 자신을 수양하라 뜻입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는성공한 만들 없다는 뜻으로, 아직도 집무실 벽에는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이후 청주비행장 공사를 시작으로 군부대와 정부공사의 건설을 맡으면서 대보그룹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81 전문건설사인대보실업 설립하여 관공서와 토목공사를 중심으로 사업의 기치를 올린 대보그룹은, 1992 대보건설을 기반으로 종합건설업에 진출하였다. 건설업으로 시작한 대보그룹은 1995 경부고속도로 옥산 휴게소 운영권을 획득한 이어 화성, 옥천, 황간 휴게소 주유소를 인수하면서 유통분야 사업 확장에 성공하게 되었다. 2000년에는 서원밸리CC 그랜드오픈을 통해 레저산업에 뛰어들면서 사업다각화를 이뤄냈다. 오랫동안 건설업에 몸을 담으면서 위기의 순간은 없었을까? 여유자금을 손에 쥐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당연할 . 특히 한때 부동산 경기를 쥐락펴락했던, 거침없는 마이더스의 아니었던가. “건설사들이 돈이 되는 민간아파트 분양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사업참여를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잘했던 결정이었습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 미분양 사태 등으로 무너지는 중대형 건설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민간아파트 분양사업의 유혹을 뒤로 하고 2002 한국도로공사 자회사로 민영화를 추진하던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하면서, 대보그룹은 건설-통신-유통-레저로 이어지는 명실상부한 종합서비스그룹으로 거듭나며 멈추지 않는 성장을 이어가게 되었다.

 


 

 

정도경영과 나눔경영을 실천하다 


최등규 회장이 추구하는 경영 이념은정도경영나눔경영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급하게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내실을 탄탄히 다지며 커나가는 . 그래야 회사도 직원들도 행복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돈을 벌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고객이 되어 사회에 보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장학사업이나 그린콘서트, 이웃돕기, 자원봉사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서원밸리CC에서 골프장 최초로 대규모 무료 자선음악회인 그린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그룹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사실 골프장의 생명인 잔디를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잔디를 밟지 말라고만 교육했지 잔디를 밟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좋은 잔디를 마음껏 밟으면서 골프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일조하고자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올해 11번째를 맞이한 콘서트를 통해 20 명이 다녀갔고 당일 하루 동안 모은 시민들의 자선기금 누적액은 4 가까이 됩니다. 특히 잔디보호를 위해 관람객들이 모두 운동화를 신고, 먹거리장터에서 스스로 줄을 서고, 공연이 끝난 쓰레기를 되가져가거나 직원들의 청소를 돕는 매년 높아지는 시민의식에 놀라기도 합니다.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만큼 앞으로 한국의 전통을 알릴 있는 콘텐츠도 준비할 계획입니다.”

 

최등규 회장은 사재 출연도 마다 않고 장학 지원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CEO로도 이름이 높다. 이러한 나눔 사업을 시작하게 계기는 무엇일까? “어렸을 워낙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해본 없습니다. 배고픔이 너무 컸기에 돈을 많이 벌면 나와 같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나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골프장과 휴게소 공간을 이용해 무료 결혼식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대보그룹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눔 활동을 실천하며 살고자 합니다.” 대보그룹이 실시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은 손에 꼽을 없을 정도로 분야와 규모가 방대하다. 사랑의 집짓기, 보육원과 양로원 매월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무료 자선음악회인 그린콘서트 개최, 보육원, 경로원, 장애인보호시설, 적십자, 선교회 등을 통한 기부활동은 물론, 서울대병원 등에 의학발전기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또한 대천고등학교에 영재관을 건립, 기증하고 소년소녀가장 고속도로 사고 유가족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향토장학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반면교사를 통해 미래를 건설하다


대보산업-대보실업-대보그룹까지, 최등규 회장이 고집스레 지켜온대보(大保)’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 고향은 충남 보령입니다. 대보라는 이름은 대천의 () 보령의 ()에서 하나씩 가져온 것입니다. 어릴 고향을 떠나오면서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회사명을대보 지었던 것이죠. ‘( )’, ‘(지킬 )’라는 한자는, 인생을 걸고 작게는 가족, 크게는 회사와 사회를 단단히 지켜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내실경영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튼튼한 기업으로 가정과 사회를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대보그룹의 인재상은 회장과 다분히 닮아 있다. 직원들에게목표를 정하면 악바리 정신으로 반드시 해내겠다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강조한다. 최등규 회장과 절친한 지인인 서울대학교 조동성 교수는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매사에 빈틈이 없습니다. 신규사업 구상에도 현장경험 이론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스타일이라 실패가 없지요. 그것이 바로 대보그룹의 성공 이유입니다. 심사숙고하는 편이지만 한번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도 보여집니다.” 대보정신은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남보다 부지런하고 뛰는 것이다. 매년 6 창립기념일에는 한강 10km 마라톤을, 매년 10 말에는 무박 2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열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면 본인은 물론, 가정, 회사, 나아가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회장은 역설한다.

 

최등규 회장은 오수아 여사와의 슬하에 2남을 두었다. 큰아들(최정훈·35) MIT에서 MBA 마친 연방정부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고 현재 대보건설의 전략기획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둘째 아들(최재훈·34) 뉴욕에서 공부를 끝내고 CPA 취득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얼마 역시 대보정보통신 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곧은 성품의 회장은 아무리 자식이어도 본인의 능력이 미치지 않으면 회사에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것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대보정신이다

 

현재는 건설경기가 침체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나 사업 확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유보하고 내실 안정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지난해 서원밸리CC 45홀로 증설한 얼마 되지 않아 무리한 확장보다는 안정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침체기와 안정화 단계가 끝나면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과 시너지를 이룰 있는 분야를 새롭게 검토할 예정이다. 기존 4개의 주력 사업(건설, IT, 유통, 레저) 보다 탄탄히 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외형적 성장보다는 안정적이고 내실 있는 기업을 만들 예정이다.  

 

대보그룹 대회의실에는지시 1%, 확인 99%’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매사 정확하고 철저한 확인 작업을 중시하는 최등규 회장의 성격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문구다. 지난 6 창립 33주년을 맞은 대보그룹은 올해 3,500명의 임직원이 매출액 1 원을 웃도는 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회장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보다 협력업체들과의 상생,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이루며 사회친화적인 기업을 완성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둔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지난날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미래로 힘차게 정진하는 대보그룹의 모습을 주목해야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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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철저磨我鐵杵로 대의大義를 지켜가다

Cover Story,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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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철저磨我鐵杵로 대의大義를 지켜가다

대보그룹 창업주 최등규 회장,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말한다면세상을 아는 기업인이라 하고, 대보를 아는 사람은악바리라고 한다. 1981 6 대보실업으로 출발하여 대보건설, 대보유통, 대보정보통신, 서원밸리컨트리클럽 등으로 이어진 성공신화를 내려가고 있는 최등규 회장을 지난 10 7 대보그룹 회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한혜진   Photographer 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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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AMP 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AMP 과정 수료, 서울과학종합대학원 aSSIST 4T CEO과정 수료, KMAC 와튼스쿨 CEO 과정 수료, 경력 1981 대보실업 대표, 1993 대보종합건설 대표, 1995 대보유통 대표, 2000 서원밸리 컨트리클럽 회장, 2002 DB정보통신 회장, 현재 대보그룹 회장  포상 2009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36인에 선정(환경재단), 2012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골프대중화 공로)

 

최근 흔하게 쓰는 용어 개천용이라는 말이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줄임말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공을 거둔, 자수성가한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다. 격동의 1970년대를 지나 IMF 겪기 전까지 고속성장을 하며 질주해온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수많은 성공신화와 개천용을 양산해냈다.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도 개천용 사람이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작은 용이 한국경제의 축을 지탱하는 거대한 용이 것이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


최등규 회장은 1948년생으로 6·25전쟁과 1970년대의 격동기를 몸으로 직접 겪은 세대다. 척박한 환경과 불안정한 사회환경 속에서 그를 일으킨 불도저 같은도전 정신이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옛말을 가슴에 새기며,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우리나라의 중심이자 가장 도시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젊은 패기하나만 믿고 올라온 서울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부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오후에는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문지기로 일했지요.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서울 생활은 매우 힘들었지만, 성공하기 전까지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매일 다짐했습니다. 먹고 싶은 , 하고 싶은 참아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요. 그렇게 치열하게 일한 결과 상경한 만에 광화문 인근의 독서실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보실업을 창립하기 전까지, 대보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무역과 유통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유명 이유식인 거버 제품의 아시아 총판권을 따내고, 당시에는 쉽게 접할 없었던 스킨스쿠버와 스키 고급 레저용품을 수입, 유통하면서 많은 이익을 냈다. 특히 스킨스쿠버와 스키 용품을 군부대에 납품하며 인맥을 넓혔다. 또한 부동산 운영에 특히 이재가 밝았던 그는 잠실의 아파트와 상가 운영으로 많은 이익을 보았다. 당시 어느 중앙 일간지에최등규가 아파트를 사면 아파트 값이 뛴다 분석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30 초반에 서울 중심에 아파트 80채를 소유한 부동산재벌이 되었다. 독서실과 무역업, 부동산 사업 손대는 것마다 수익을 창출하며 자신감이 생긴 회장은 광산업에 진출하게 된다. 전라북도의 채석장에서 화강석을 채취하여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사업이었다. 일반 건축물에 쓰이는 원자재가 아닌 고급 건축물에 사용되는 고급 자재로 포커스를 맞춘 채석사업은 원료의 결함으로 인해 채산성이 떨어지고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채석사업이 실패하면서 그의 성공신화는 끝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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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나를 일으키는 힘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는 앞으로만 달리는 경주마 같았습니다. 또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니 한마디로 겁이 없었지요. 그러던 지인을 통해 광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고, 앞뒤 재지 않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업 실패 가지고 있던 아파트는 빚을 갚기 위해 모두 처분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시골 처가에 내려보냈습니다. 십여 동안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순식간에제로 되었습니다. 보령에서 처음 올라왔던 시절로 돌아간 것이지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와 밑바닥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악바리처럼 일만 했지요.” 당시 장인어른에게 들었던 한마디는 평생 그를 곧세우는 좌우명이 되었다. “마아철저(磨我鐵杵)라는 말은 내가 가장 힘든 고난에 빠졌을 나를 일으켜준 말입니다.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어려움을 겪을 장인어른께서 써주신 말인데, ‘쇠절구공이를 갈아서 만들듯 자신을 수양하라 뜻입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는성공한 만들 없다는 뜻으로, 아직도 집무실 벽에는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이후 청주비행장 공사를 시작으로 군부대와 정부공사의 건설을 맡으면서 대보그룹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81 전문건설사인대보실업 설립하여 관공서와 토목공사를 중심으로 사업의 기치를 올린 대보그룹은, 1992 대보건설을 기반으로 종합건설업에 진출하였다. 건설업으로 시작한 대보그룹은 1995 경부고속도로 옥산 휴게소 운영권을 획득한 이어 화성, 옥천, 황간 휴게소 주유소를 인수하면서 유통분야 사업 확장에 성공하게 되었다. 2000년에는 서원밸리CC 그랜드오픈을 통해 레저산업에 뛰어들면서 사업다각화를 이뤄냈다. 오랫동안 건설업에 몸을 담으면서 위기의 순간은 없었을까? 여유자금을 손에 쥐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당연할 . 특히 한때 부동산 경기를 쥐락펴락했던, 거침없는 마이더스의 아니었던가. “건설사들이 돈이 되는 민간아파트 분양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사업참여를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잘했던 결정이었습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 미분양 사태 등으로 무너지는 중대형 건설사들을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민간아파트 분양사업의 유혹을 뒤로 하고 2002 한국도로공사 자회사로 민영화를 추진하던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하면서, 대보그룹은 건설-통신-유통-레저로 이어지는 명실상부한 종합서비스그룹으로 거듭나며 멈추지 않는 성장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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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경영과 나눔경영을 실천하다 


최등규 회장이 추구하는 경영 이념은정도경영나눔경영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급하게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내실을 탄탄히 다지며 커나가는 . 그래야 회사도 직원들도 행복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돈을 벌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고객이 되어 사회에 보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장학사업이나 그린콘서트, 이웃돕기, 자원봉사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서원밸리CC에서 골프장 최초로 대규모 무료 자선음악회인 그린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그룹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사실 골프장의 생명인 잔디를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의 반대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잔디를 밟지 말라고만 교육했지 잔디를 밟아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좋은 잔디를 마음껏 밟으면서 골프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고 즐거운 기억을 만드는 일조하고자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올해 11번째를 맞이한 콘서트를 통해 20 명이 다녀갔고 당일 하루 동안 모은 시민들의 자선기금 누적액은 4 가까이 됩니다. 특히 잔디보호를 위해 관람객들이 모두 운동화를 신고, 먹거리장터에서 스스로 줄을 서고, 공연이 끝난 쓰레기를 되가져가거나 직원들의 청소를 돕는 매년 높아지는 시민의식에 놀라기도 합니다.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만큼 앞으로 한국의 전통을 알릴 있는 콘텐츠도 준비할 계획입니다.”

 

최등규 회장은 사재 출연도 마다 않고 장학 지원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CEO로도 이름이 높다. 이러한 나눔 사업을 시작하게 계기는 무엇일까? “어렸을 워낙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해본 없습니다. 배고픔이 너무 컸기에 돈을 많이 벌면 나와 같이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이나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골프장과 휴게소 공간을 이용해 무료 결혼식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대보그룹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눔 활동을 실천하며 살고자 합니다.” 대보그룹이 실시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은 손에 꼽을 없을 정도로 분야와 규모가 방대하다. 사랑의 집짓기, 보육원과 양로원 매월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무료 자선음악회인 그린콘서트 개최, 보육원, 경로원, 장애인보호시설, 적십자, 선교회 등을 통한 기부활동은 물론, 서울대병원 등에 의학발전기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또한 대천고등학교에 영재관을 건립, 기증하고 소년소녀가장 고속도로 사고 유가족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향토장학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반면교사를 통해 미래를 건설하다


대보산업-대보실업-대보그룹까지, 최등규 회장이 고집스레 지켜온대보(大保)’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 고향은 충남 보령입니다. 대보라는 이름은 대천의 () 보령의 ()에서 하나씩 가져온 것입니다. 어릴 고향을 떠나오면서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회사명을대보 지었던 것이죠. ‘( )’, ‘(지킬 )’라는 한자는, 인생을 걸고 작게는 가족, 크게는 회사와 사회를 단단히 지켜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내실경영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튼튼한 기업으로 가정과 사회를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대보그룹의 인재상은 회장과 다분히 닮아 있다. 직원들에게목표를 정하면 악바리 정신으로 반드시 해내겠다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강조한다. 최등규 회장과 절친한 지인인 서울대학교 조동성 교수는 회장을 이렇게 평가한다.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매사에 빈틈이 없습니다. 신규사업 구상에도 현장경험 이론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스타일이라 실패가 없지요. 그것이 바로 대보그룹의 성공 이유입니다. 심사숙고하는 편이지만 한번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도 보여집니다.” 대보정신은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남보다 부지런하고 뛰는 것이다. 매년 6 창립기념일에는 한강 10km 마라톤을, 매년 10 말에는 무박 2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열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면 본인은 물론, 가정, 회사, 나아가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회장은 역설한다.

 

최등규 회장은 오수아 여사와의 슬하에 2남을 두었다. 큰아들(최정훈·35) MIT에서 MBA 마친 연방정부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고 현재 대보건설의 전략기획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둘째 아들(최재훈·34) 뉴욕에서 공부를 끝내고 CPA 취득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얼마 역시 대보정보통신 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곧은 성품의 회장은 아무리 자식이어도 본인의 능력이 미치지 않으면 회사에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식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것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대보정신이다

 

현재는 건설경기가 침체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나 사업 확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유보하고 내실 안정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지난해 서원밸리CC 45홀로 증설한 얼마 되지 않아 무리한 확장보다는 안정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침체기와 안정화 단계가 끝나면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과 시너지를 이룰 있는 분야를 새롭게 검토할 예정이다. 기존 4개의 주력 사업(건설, IT, 유통, 레저) 보다 탄탄히 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외형적 성장보다는 안정적이고 내실 있는 기업을 만들 예정이다.  

 

대보그룹 대회의실에는지시 1%, 확인 99%’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매사 정확하고 철저한 확인 작업을 중시하는 최등규 회장의 성격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문구다. 지난 6 창립 33주년을 맞은 대보그룹은 올해 3,500명의 임직원이 매출액 1 원을 웃도는 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회장은 단순한 경제적 성공보다 협력업체들과의 상생,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이루며 사회친화적인 기업을 완성하는 궁극적인 가치를 둔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지난날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미래로 힘차게 정진하는 대보그룹의 모습을 주목해야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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