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은 다양한 변수를 발생시킨다. 확고한 경영철학과 기업운영의 기준을 가지되 때로는 유연하게 상황을 예측해 대처하는 게 CEO의 역할 중 하나다. 관건은 이런 역량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업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그 분야에 정통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박양춘 대표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빛나는 성공 스토리를 이어 온 배경에는 엘리베이터라는 한 우물만을 판 박 대표의 뚝심과 저력이 숨겨져 있다. 엘리베이터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평가되는 박양춘 대표를 만나, 30년 경력의 비즈니스맨이 밟아온 일대기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기업의 성공은 혁신에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혁신의 시작은 남들과의 ‘다름’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을 마땅히 감내하는 것입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모든 임직원이 지향하는 사업 방향의 근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박양춘 대표가 말하는 ‘다름’의 키워드는 3가지다.
첫 번째는 ‘그 일을 가장 처음 시작했는가’다. 동종 업계 경쟁사 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선점효과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 없는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가 되었는가’다.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대체불가의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해야 선점효과의 시너지를 이어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지속가능하게 영속될 수 있는가’다.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을 가진 최고의 제품을 꾸준하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1811년에 설립된 글로벌 테크놀로지 전문기업으로, 독일 에센에 위치해 있다. 1999년, 티센과 크루프의 합병으로 유럽 최대 철강회사로 부상했다. 주력 사업은 철강, 자본재, 서비스 3개 부문인데, 엘리베이터는 자본재 부문에 속한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
1966년 2월에 설립된 동양에레베이터를 2003년 10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가 합병해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로 사명을 전환하며 국내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8년, 지금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로 다시 사명을 바꿨다.
현재 엘리베이터 업계 국내시장 점유율 2위에 올라 있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2017년도 매출은 약 7,090억 원(영업이익 737억 원, 영업이익률 10.4%)으로, 국내 진출 후 최고매출을 달성했다. 올해 회계연도 매출은 약 7,600억 원으로, 이미 지난 해 기록을 갈아 치웠다.
모두 박양춘 대표 취임 이후 일궈낸 쾌거다. 작년 기준으로 박 대표 취임 이전보다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9배 증가한 것이다. 놀라운 성과의 비결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박양춘 대표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가격을 낮추는 비용 최소화가 능사는 아닙니다. 저가 수주경쟁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발전된 첨단기술, 고객에 호소하는 감성적 디자인, 엘리베이터라는 제품에 필수불가결한 안전성 등을 우선으로 삼아 고부가가치 콘셉트로 승부하는 것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성공 비결입니다”
2019년 매출 목표를 8,000억 원으로 겨냥한 박 대표는 엘리베이터라는 제품의 특성상 기술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비용이 발생하지만 고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매출 증가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향해야 할 본연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CEO로서의 단호한 의지다.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사업이 바로 엘리베이터 분야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승부를 피한 적도, 패배한 적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승리하는 법,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엘리베이터와 동고동락한 만큼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이것입니다. CEO가 사업적 역량은 물론, 경쟁에서 기필코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품을 때 회사의 구성원도 자연스레 그 기운을 전달 받는 것 아닐까요?”
용장수하무약병(勇將手下無弱兵). 모름지기 용맹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CEO가 가진 성향과 철학이 어떠한가에 따라 임직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특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강산이 3번 변할 동안 엘리베이터 분야에 종사한 박양춘 대표가 내비치는 자신감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원천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월 5일 외국기업의 날 기념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훈받은 박양춘 대표

 

만년 3등 기업 2위로 이끈 저력
박양춘 대표가 엘리베이터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LG산전(現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박 대표는 20년 동안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에 장기근속하며, 전략기획, 국내 및 해외영업, 유지보수, 품질관리 등 엘리베이터에 관련된 총체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한, 말 그대로 ‘엘리베이터 통(通’)이다. 이렇듯 풍부한 경력을 인정받아 2008년 오티스 엘리베이터 부사장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진에 합류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오티스 엘리베이터의 중국법인인 시그마 엘리베이터 대표로 취임하며, CEO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박 대표를 다시 한국으로 부른 것은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다. 하지만 2012년 4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CEO로 취임한 박양춘 대표가 첫 출근길에 본사로부터 전달 받은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티센크루프 본사의 입장은 더 이상 한국시장을 확장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대로 유지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안공장을 매각해 현금화시키고 서울 인근에 임대를 받아 이전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국내 진출 10년째를 맞은 티센크루프 본사는 완벽히 실패한 케이스로 단정하고, 손실을 최소화해 신속히 철수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실제 박 대표가 맞닥뜨린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오티스 엘리베이터에 밀려 10% 선에 그치는 시장점유율은 만년 3위 타이틀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에게 남겼다. 저조한 실적은 10년 동안의 누적적자를 1,000억 원에 달하게 만들었다.
내부 구성원이 표출하는 분위기는 더욱 냉담했다. 동종 업계보다 열악한 임금 수준, 잦은 구조조정 등 전신인 동양에레베이터 시절부터 쌓여온 불만과 경영진에 대한 불신은 강성 노조를 부추기는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무엇보다 오티스라는 경쟁사에서 영입된 박양춘 대표에게 회사 구성원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취임 당시 임직원은 잠시 왔다가 자기 이속만 채우고 떠날 사람으로 저를 판단했을 겁니다. 더구나 오티스 엘리베이터 출신이라는 명찰은 미국 기업문화를 반영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겠냐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했습니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한 달 이상 장기화되었다. 박양춘 대표는 승부수를 띄운다. 본사 방침에 역행해 천안공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임직원에게는 회사의 인사원칙 첫 번째가 고용보장에 있다고 공개했다. 대다수 외국계 기업이 수익 발생을 위한 손쉬운 지름길로 구조조정을 택하지만 박 대표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외국기업이 국내에 진출할 때 가장 경계해야하는 요소가 한국적 현실의 배제입니다. 특수한 환경을 가진 다국적 기업의 경우 글로벌 기준을 무작정 고수하기 마련입니다. 이래서는 국내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고용 안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윤 창출이 기업 본연의 목적이지만 결국 그 이윤도 직원들에게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와 한국적 감성을 충분히 감안한 유연한 경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경쟁사 수준의 급여 책정, 일할 맛 나는 직장 만들기, 노사 간 상생 등 임직원을 위한 경영을 우선적으로 실시한 박 대표는 원가절감에 치우친 가격경쟁을 철저히 지양하고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판매실적은 호조를 보였고 이를 통해 창출된 이윤은 다시 임직원 복지에 투자했다.
연속된 선순환의 결과는 취임 1년 만에 놀라운 성적표로 돌아왔다. 2014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국내 시장점유율에서 업계 2위로 올라섰고, 다음해인 2015년에는 매출액이 박 대표 취임 당시 보다 2배가량 증가한 6,000억 원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영업이익 역시 6배를 웃도는 500억 원에 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양춘 대표 자신이 오랜 세월 몸담았고, 취임 초기 임직원의 반감을 사게 된 원인 중 하나인 오티스 엘리베이터를 따돌린 것이다. 2018년 외국기업의 날 은탑산업훈장, 2018년 동아일보 공감경영대사 고용노동부장관상, 2016년 대한상의 기업혁신대상 최우수 CEO상 & 산업부장관상 등 굵직굵직한 수상 역시 박 대표의 경영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사 방침을 역행하면서도 임직원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진정한 리더의 품격을 보여줬다는데 있지 않을까? 적자에 허덕이던 만연 3위 기업에게 최고실적을 선사하며, 1위 마저 긴장케 하는 강력한 2인자의 길로 인도했다는 점이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전설되기 위한 두려움 없는 도전
충북 제천이 고향인 박양춘 대표의 유년시절 장래희망은 유별났다. 한 경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당시만 해도 또래들이 대통령, 장군, 의사, 판사 등 막연하고 엇비슷한 꿈을 가질 때 어린 박양춘은 ‘사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슴에 심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지독한 가난이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기업을 이끄는 CEO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고 밝혔다.
어려운 집안 사정은 대학 진학을 어렵게 할 것임을 일찌감치 짐작하게 했고, 이런 트라우마는 박양춘 대표에게 어떤 경쟁에서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을 내재하게 했다. 두려워하거나 물러나는 법 없이, 승부에서 이기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체감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이 현대중공업이라는 점도 박 대표의 외형적 이미지와 비슷한 괘를 형성한다. 호방한 성격과 예순 살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풍채인 박양춘 대표의 젊은 시절은 중공업, 철강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시킬 때 가능한 추측이다.
실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만 넘기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회사원이 아니라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부딪혀 경험하고 성장하고자 원했던 청년 박양춘에게 ‘승부사’, ‘보스’, ‘스트롱맨’ 등의 수식어는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고 겉으로 비치는 게 모두가 아니다. 다양한 업무 경력을 쌓으며 많은 사람을 만난 박양춘 대표에게 CEO가 가져야할 미덕들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소통과 공감을 통해 얻은 포용력,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배우는 학습력, 판단이 섰다면 배포와 강단으로 단호하게 내리는 결단력, 그리고 한번 결정한 일은 쉼 없이 밀어 붙이는 추진력을 차곡차곡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테랑 CEO로서 지금의 박양춘 대표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출근은 임직원 중 가장 일찍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오후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집무실을 나섭니다. 휴일에도 골프로 저만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즐깁니다. 열심히 일하는 건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 아니겠습니까? 직원들에게도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개발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얼른 자리를 비워줘야겠죠”
은퇴 후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박 대표지만 그 즈음 자신의 이름이 엘리베이터 업계의 ‘전설’이 되었으면 소망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인터뷰하고 있는 박양춘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이것이 바로 경영이다
고속성장의 기반을 탄탄히 다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와 박양춘 대표는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지속적인 기술개발, 한국적 현실을 적용한 맞춤식 설계와 디자인, 고객만족 경영 등 끝없는 혁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천안공장이다.
국내에 진출한 엘리베이터 분야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 캠페인 일환으로 천안공장을 글로벌 IT기업 구글을 벤치마킹해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했다. 2014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에 따라 천안공장은 4개의 교육장과 6개의 토론공간을 갖춘 연수시설을 비롯해 교육전용시설인 SEED캠퍼스코리아까지 설비한 탓에 ‘엘리베이터 캠퍼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페, 극장, 스포츠 시설 등 최신 인테리어를 갖춘 만큼 파트너 기업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사물인터넷 적용 등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시도는 명실상부 ‘스마트 팩토리’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용접기 도입, 완전자동화판금 설비, 스마트 물류센터 건립은 천안공장의 생산성과 출하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매출상승으로 이어지는 충분조건이 됩니다. 향후에도 장기적 발전을 위한 천안공장 재투자는 계속될 것입니다”
박양춘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려는 목표에 있다. 실제, 회사의 비전을 구성원과 공유해 건전한 조직문화 개선에 이바지하는 ‘조직문화 4.0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업의 가치를 모든 임직원과 함께 나누려는 박 대표의 미래지향적 의지의 발로라 하겠다.
한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천안공장 연구소는 최근 글로벌 R&D(연구개발) 메카로도 각광 받고 있다. 티센크루프 본사에서 진행 중인 글로벌 컨트롤러 개발 프로젝트의 초고속 엘리베이터용 제품개발을 담당한데 이어, 본사 독점공급 제품인 TWIN 엘리베이터 국산화까지 추진 중인 것이다. 엘리베이터 제작에 있어 핵심인 고도의 글로벌 기술을 국내에 유치하는 성과는 업계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TWIN 엘리베이터는 1개의 승강 통로에 2대의 엘리베이터가 상호 독립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이다. 층과 층 사이 이동이 빈번한 고층건물에 설치될 경우 운행효율을 기존 보다 30% 이상 향상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CJ E&M센터, 아모레퍼시픽 본사 등 국내 8개 고층 건물에 56대의 TWIN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다. 2020년 완공 예정인 파크원의 56대와 함께 G스퀘어에도 TWIN 엘리베이터 24대가 2020년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인 나전칠기를 엘리베이터에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로 구상하고 있다. 박양춘 대표가 누차 강조한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엘리베이터 디자인에 반영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이 눈길을 모은다. 
“2020년까지 국내 1위 승강기 기업이 되는 것이 저와 회사의 목표입니다. 단순히 매출과 시장점유율 1위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가장 가치 있고, 많은 이익을 내며, 임직원이 만족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판매 대수를 늘리는 저가수주, 저가경쟁이 아닌 혁신적 기술과 우수한 품질, 임직원이 흘린 땀의 결실로 당당하게 업계 1위라는 왕좌에 앉을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CEO 집무실 바로 옆은 경영지원팀이나 총무팀 등의 부서가 위치한다. 그러나 박 대표의 집무실 옆에는 마케팅실과 함께 제품 디자이너들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 업무 일선에서 접점이 되는 영역을 놓치지 않으려는 박양춘 대표의 경영 마인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드레스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박 대표의 팔뚝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한 여성 종아리보다 두터운 그 팔뚝에 30년 엘리베이터 외길 인생이 올곧이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뒤이어 눈길이 간 것은 책상 위에 놓인 책이다.
2010년, 파산한 일본항공(JAL)에 단기필마(單騎匹馬)처럼 들어가 13개월 만에 흑자 전환을 일구고, 2012년에 역대 최고매출을 경신한 이나모리 가즈오(Kazuo Inamori)의 저서다. 그의 이름이 일본 기업의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 받는 이유는 숱한 열거가 가능하다. 일본항공을 기사회생시킨 후 자신이 설립한 교세라로 유유히 돌아온 유명한 일화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일본항공의 재기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1,155일간의 투쟁>이라는 서적에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봐두게, 이것이 경영이네”
박양춘 대표가 임직원부터 고객, 경쟁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행보를 지켜본 수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 남기고픈 독백 같지 않을까?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문효근   Photographer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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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으로 만든 엘리베이터 신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박양춘 대표

Cover Story,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박양춘 대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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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으로 만든 엘리베이터 신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박양춘 대표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은 다양한 변수를 발생시킨다. 확고한 경영철학과 기업운영의 기준을 가지되 때로는 유연하게 상황을 예측해 대처하는 게 CEO의 역할 중 하나다. 관건은 이런 역량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업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그 분야에 정통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박양춘 대표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빛나는 성공 스토리를 이어 온 배경에는 엘리베이터라는 한 우물만을 판 박 대표의 뚝심과 저력이 숨겨져 있다. 엘리베이터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평가되는 박양춘 대표를 만나, 30년 경력의 비즈니스맨이 밟아온 일대기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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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성공은 혁신에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혁신의 시작은 남들과의 ‘다름’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도전을 마땅히 감내하는 것입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모든 임직원이 지향하는 사업 방향의 근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박양춘 대표가 말하는 ‘다름’의 키워드는 3가지다.
첫 번째는 ‘그 일을 가장 처음 시작했는가’다. 동종 업계 경쟁사 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선점효과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 없는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가 되었는가’다. 우수한 품질을 바탕으로 대체불가의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해야 선점효과의 시너지를 이어갈 수 있다. 세 번째는 ‘지속가능하게 영속될 수 있는가’다.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수한 품질을 가진 최고의 제품을 꾸준하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1811년에 설립된 글로벌 테크놀로지 전문기업으로, 독일 에센에 위치해 있다. 1999년, 티센과 크루프의 합병으로 유럽 최대 철강회사로 부상했다. 주력 사업은 철강, 자본재, 서비스 3개 부문인데, 엘리베이터는 자본재 부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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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 밑에 약졸 없다
1966년 2월에 설립된 동양에레베이터를 2003년 10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가 합병해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로 사명을 전환하며 국내에 진출했다. 그리고 2008년, 지금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로 다시 사명을 바꿨다.
현재 엘리베이터 업계 국내시장 점유율 2위에 올라 있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2017년도 매출은 약 7,090억 원(영업이익 737억 원, 영업이익률 10.4%)으로, 국내 진출 후 최고매출을 달성했다. 올해 회계연도 매출은 약 7,600억 원으로, 이미 지난 해 기록을 갈아 치웠다.
모두 박양춘 대표 취임 이후 일궈낸 쾌거다. 작년 기준으로 박 대표 취임 이전보다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9배 증가한 것이다. 놀라운 성과의 비결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박양춘 대표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가격을 낮추는 비용 최소화가 능사는 아닙니다. 저가 수주경쟁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발전된 첨단기술, 고객에 호소하는 감성적 디자인, 엘리베이터라는 제품에 필수불가결한 안전성 등을 우선으로 삼아 고부가가치 콘셉트로 승부하는 것이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성공 비결입니다”
2019년 매출 목표를 8,000억 원으로 겨냥한 박 대표는 엘리베이터라는 제품의 특성상 기술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비용이 발생하지만 고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매출 증가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향해야 할 본연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CEO로서의 단호한 의지다.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사업이 바로 엘리베이터 분야입니다. 하지만 한 번도 승부를 피한 적도, 패배한 적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승리하는 법,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엘리베이터와 동고동락한 만큼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이 바로 이것입니다. CEO가 사업적 역량은 물론, 경쟁에서 기필코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품을 때 회사의 구성원도 자연스레 그 기운을 전달 받는 것 아닐까요?”
용장수하무약병(勇將手下無弱兵). 모름지기 용맹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CEO가 가진 성향과 철학이 어떠한가에 따라 임직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특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강산이 3번 변할 동안 엘리베이터 분야에 종사한 박양춘 대표가 내비치는 자신감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원천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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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외국기업의 날 기념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훈받은 박양춘 대표

 

만년 3등 기업 2위로 이끈 저력
박양춘 대표가 엘리베이터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LG산전(現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에 입사하면서 부터다. 박 대표는 20년 동안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에 장기근속하며, 전략기획, 국내 및 해외영업, 유지보수, 품질관리 등 엘리베이터에 관련된 총체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한, 말 그대로 ‘엘리베이터 통(通’)이다. 이렇듯 풍부한 경력을 인정받아 2008년 오티스 엘리베이터 부사장직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진에 합류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오티스 엘리베이터의 중국법인인 시그마 엘리베이터 대표로 취임하며, CEO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박 대표를 다시 한국으로 부른 것은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다. 하지만 2012년 4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CEO로 취임한 박양춘 대표가 첫 출근길에 본사로부터 전달 받은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티센크루프 본사의 입장은 더 이상 한국시장을 확장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대로 유지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안공장을 매각해 현금화시키고 서울 인근에 임대를 받아 이전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국내 진출 10년째를 맞은 티센크루프 본사는 완벽히 실패한 케이스로 단정하고, 손실을 최소화해 신속히 철수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실제 박 대표가 맞닥뜨린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와 오티스 엘리베이터에 밀려 10% 선에 그치는 시장점유율은 만년 3위 타이틀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에게 남겼다. 저조한 실적은 10년 동안의 누적적자를 1,000억 원에 달하게 만들었다.
내부 구성원이 표출하는 분위기는 더욱 냉담했다. 동종 업계보다 열악한 임금 수준, 잦은 구조조정 등 전신인 동양에레베이터 시절부터 쌓여온 불만과 경영진에 대한 불신은 강성 노조를 부추기는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무엇보다 오티스라는 경쟁사에서 영입된 박양춘 대표에게 회사 구성원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취임 당시 임직원은 잠시 왔다가 자기 이속만 채우고 떠날 사람으로 저를 판단했을 겁니다. 더구나 오티스 엘리베이터 출신이라는 명찰은 미국 기업문화를 반영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겠냐는 우려마저 자아내게 했습니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한 달 이상 장기화되었다. 박양춘 대표는 승부수를 띄운다. 본사 방침에 역행해 천안공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임직원에게는 회사의 인사원칙 첫 번째가 고용보장에 있다고 공개했다. 대다수 외국계 기업이 수익 발생을 위한 손쉬운 지름길로 구조조정을 택하지만 박 대표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외국기업이 국내에 진출할 때 가장 경계해야하는 요소가 한국적 현실의 배제입니다. 특수한 환경을 가진 다국적 기업의 경우 글로벌 기준을 무작정 고수하기 마련입니다. 이래서는 국내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은 고용 안정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이윤 창출이 기업 본연의 목적이지만 결국 그 이윤도 직원들에게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와 한국적 감성을 충분히 감안한 유연한 경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경쟁사 수준의 급여 책정, 일할 맛 나는 직장 만들기, 노사 간 상생 등 임직원을 위한 경영을 우선적으로 실시한 박 대표는 원가절감에 치우친 가격경쟁을 철저히 지양하고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판매실적은 호조를 보였고 이를 통해 창출된 이윤은 다시 임직원 복지에 투자했다.
연속된 선순환의 결과는 취임 1년 만에 놀라운 성적표로 돌아왔다. 2014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국내 시장점유율에서 업계 2위로 올라섰고, 다음해인 2015년에는 매출액이 박 대표 취임 당시 보다 2배가량 증가한 6,000억 원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영업이익 역시 6배를 웃도는 500억 원에 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양춘 대표 자신이 오랜 세월 몸담았고, 취임 초기 임직원의 반감을 사게 된 원인 중 하나인 오티스 엘리베이터를 따돌린 것이다. 2018년 외국기업의 날 은탑산업훈장, 2018년 동아일보 공감경영대사 고용노동부장관상, 2016년 대한상의 기업혁신대상 최우수 CEO상 & 산업부장관상 등 굵직굵직한 수상 역시 박 대표의 경영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사 방침을 역행하면서도 임직원의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진정한 리더의 품격을 보여줬다는데 있지 않을까? 적자에 허덕이던 만연 3위 기업에게 최고실적을 선사하며, 1위 마저 긴장케 하는 강력한 2인자의 길로 인도했다는 점이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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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되기 위한 두려움 없는 도전
충북 제천이 고향인 박양춘 대표의 유년시절 장래희망은 유별났다. 한 경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당시만 해도 또래들이 대통령, 장군, 의사, 판사 등 막연하고 엇비슷한 꿈을 가질 때 어린 박양춘은 ‘사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슴에 심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지독한 가난이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 기업을 이끄는 CEO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고 밝혔다.
어려운 집안 사정은 대학 진학을 어렵게 할 것임을 일찌감치 짐작하게 했고, 이런 트라우마는 박양춘 대표에게 어떤 경쟁에서도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을 내재하게 했다. 두려워하거나 물러나는 법 없이, 승부에서 이기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체감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이 현대중공업이라는 점도 박 대표의 외형적 이미지와 비슷한 괘를 형성한다. 호방한 성격과 예순 살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한 풍채인 박양춘 대표의 젊은 시절은 중공업, 철강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시킬 때 가능한 추측이다.
실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만 넘기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회사원이 아니라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부딪혀 경험하고 성장하고자 원했던 청년 박양춘에게 ‘승부사’, ‘보스’, ‘스트롱맨’ 등의 수식어는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고 겉으로 비치는 게 모두가 아니다. 다양한 업무 경력을 쌓으며 많은 사람을 만난 박양춘 대표에게 CEO가 가져야할 미덕들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소통과 공감을 통해 얻은 포용력,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배우는 학습력, 판단이 섰다면 배포와 강단으로 단호하게 내리는 결단력, 그리고 한번 결정한 일은 쉼 없이 밀어 붙이는 추진력을 차곡차곡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테랑 CEO로서 지금의 박양춘 대표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출근은 임직원 중 가장 일찍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오후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집무실을 나섭니다. 휴일에도 골프로 저만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즐깁니다. 열심히 일하는 건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 아니겠습니까? 직원들에게도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기개발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얼른 자리를 비워줘야겠죠”
은퇴 후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박 대표지만 그 즈음 자신의 이름이 엘리베이터 업계의 ‘전설’이 되었으면 소망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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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고 있는 박양춘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이것이 바로 경영이다
고속성장의 기반을 탄탄히 다진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와 박양춘 대표는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지속적인 기술개발, 한국적 현실을 적용한 맞춤식 설계와 디자인, 고객만족 경영 등 끝없는 혁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천안공장이다.
국내에 진출한 엘리베이터 분야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일하기 좋은 직장 만들기’ 캠페인 일환으로 천안공장을 글로벌 IT기업 구글을 벤치마킹해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했다. 2014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에 따라 천안공장은 4개의 교육장과 6개의 토론공간을 갖춘 연수시설을 비롯해 교육전용시설인 SEED캠퍼스코리아까지 설비한 탓에 ‘엘리베이터 캠퍼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페, 극장, 스포츠 시설 등 최신 인테리어를 갖춘 만큼 파트너 기업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 사물인터넷 적용 등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시도는 명실상부 ‘스마트 팩토리’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용접기 도입, 완전자동화판금 설비, 스마트 물류센터 건립은 천안공장의 생산성과 출하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매출상승으로 이어지는 충분조건이 됩니다. 향후에도 장기적 발전을 위한 천안공장 재투자는 계속될 것입니다”
박양춘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만들려는 목표에 있다. 실제, 회사의 비전을 구성원과 공유해 건전한 조직문화 개선에 이바지하는 ‘조직문화 4.0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업의 가치를 모든 임직원과 함께 나누려는 박 대표의 미래지향적 의지의 발로라 하겠다.
한편,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의 천안공장 연구소는 최근 글로벌 R&D(연구개발) 메카로도 각광 받고 있다. 티센크루프 본사에서 진행 중인 글로벌 컨트롤러 개발 프로젝트의 초고속 엘리베이터용 제품개발을 담당한데 이어, 본사 독점공급 제품인 TWIN 엘리베이터 국산화까지 추진 중인 것이다. 엘리베이터 제작에 있어 핵심인 고도의 글로벌 기술을 국내에 유치하는 성과는 업계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TWIN 엘리베이터는 1개의 승강 통로에 2대의 엘리베이터가 상호 독립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이다. 층과 층 사이 이동이 빈번한 고층건물에 설치될 경우 운행효율을 기존 보다 30% 이상 향상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CJ E&M센터, 아모레퍼시픽 본사 등 국내 8개 고층 건물에 56대의 TWIN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다. 2020년 완공 예정인 파크원의 56대와 함께 G스퀘어에도 TWIN 엘리베이터 24대가 2020년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인 나전칠기를 엘리베이터에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로 구상하고 있다. 박양춘 대표가 누차 강조한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엘리베이터 디자인에 반영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이 눈길을 모은다. 
“2020년까지 국내 1위 승강기 기업이 되는 것이 저와 회사의 목표입니다. 단순히 매출과 시장점유율 1위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가장 가치 있고, 많은 이익을 내며, 임직원이 만족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판매 대수를 늘리는 저가수주, 저가경쟁이 아닌 혁신적 기술과 우수한 품질, 임직원이 흘린 땀의 결실로 당당하게 업계 1위라는 왕좌에 앉을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CEO 집무실 바로 옆은 경영지원팀이나 총무팀 등의 부서가 위치한다. 그러나 박 대표의 집무실 옆에는 마케팅실과 함께 제품 디자이너들이 자리하고 있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 업무 일선에서 접점이 되는 영역을 놓치지 않으려는 박양춘 대표의 경영 마인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드레스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박 대표의 팔뚝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한 여성 종아리보다 두터운 그 팔뚝에 30년 엘리베이터 외길 인생이 올곧이 담겨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뒤이어 눈길이 간 것은 책상 위에 놓인 책이다.
2010년, 파산한 일본항공(JAL)에 단기필마(單騎匹馬)처럼 들어가 13개월 만에 흑자 전환을 일구고, 2012년에 역대 최고매출을 경신한 이나모리 가즈오(Kazuo Inamori)의 저서다. 그의 이름이 일본 기업의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 받는 이유는 숱한 열거가 가능하다. 일본항공을 기사회생시킨 후 자신이 설립한 교세라로 유유히 돌아온 유명한 일화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일본항공의 재기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1,155일간의 투쟁>이라는 서적에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봐두게, 이것이 경영이네”
박양춘 대표가 임직원부터 고객, 경쟁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행보를 지켜본 수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 남기고픈 독백 같지 않을까?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문효근   Photographer 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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